거룩한 아름다움,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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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아름다움, 권정생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4.03.2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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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이철수
by 이철수

“그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못나고 병신스럽고 거칠고 쓸쓸하다. 그러나 아름답다.” 이현주 목사는 <한송이 이름없는 들꽃으로>(신앙과지성사, 2013)에서 권정생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생전에 권정생과 이현주는 상당히 가까이 지냈는데, 어느 날입니다. 권정생의 집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보입니다. 그 문을 열어놓고 둘이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데, 마당에서 놀던 못생긴 암탉 한 마리가 슬슬 다가오더니 성큼 방안으로 들어섭니다. 무심코 이현주가 손을 뻗어 밖으로 내몰았지만, 암탉은 시큰둥하니 나갈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이현주가 본격적으로 닭을 내쫓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았을 때였습니다. 권정생이 두 팔로, 마치 유리그릇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그 못생긴 암탉을 감싸 안더니 앉은걸음으로 주춤거리고 걸어가 문밖에다 살그머니 내려놓았습니다.

“전도사님네 닭이야. 세 마리가 있었는데 다 죽고 이놈 혼자 남았어.”

영주역 대합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그곳에서 쑥대강이 머리를 한 키 큰 거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현주와 권정생 앞으로 어스렁 걸어오더니 발밑에 떨어져 있는 누가 다 먹고 버린 사과를 집어 들고 흙이 묻은 채로 입속에 넣고 씹어 삼켰습니다. 이번엔 어느 중년 농부의 뒷주머니에 시선을 박았습니다. 거기엔 두둑한 지갑이 꽂혀 있었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그리로 손을 뻗었습니다. 순간 그야말로 제비가 물을 차듯 거지는 농부의 엉덩이에 붙어 있는 지푸라기를 잽싸게 떼어버리곤 인파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걸 지켜보던 이현주가 권정생을 바라보자, 그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현주는 “다 보고 있었나? 그 천사 같은 거지를 고작 소매치기로밖에 보지 못한 나의 한심한 꼬락서니를.” 하고 그때 일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런 권정생과 이런 거지를 두고 “거룩한 아름다움”이라고 불렀습니다.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송리에서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살던 권정생은 가난한 백성들의 눈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이였던 거지요. 그래서 천지사방 눈물 글썽이는 일이 많습니다. 슬프고 가여운 세상입니다. 날마다 그치지 않는 권정생의 새벽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과연 사람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입니까? 당신이 지은 이 세상에서 사람과 뭇 짐승들이 이토록 고통을 겪고 있어도 끝내 침묵만 지키고 있을 셈입니까? 천년이 하루 같은 당신께서는 한 사람의 평생이 잠시 잠깐 지나가 버릴지 모르지만 이토록 약하디 약한 갈대 같은 인생은 고통에 고통으로 나날을 살고 있는데, 과연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십니까?”

일본의 신학자 기타모리 가조(北森加藏)는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고통을 신학>을 쓰면서, 인간과 하느님이 만나는 현장이 ‘고통’이라고 말했답니다.

“십자가를 진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의 고통에 시중을 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은 자기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의 고통을 시중든다는 말이다. … 자신이 고통을 당함으로써 하느님의 고통을 시중들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고통과 아무 상관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권정생은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러 서울 갈 때 장터 행상에서 샀을 허름한 코트에 목이 긴 털 샤쓰를 입고, 무릎이 벌쭉하니 나와 종아리가 다 드러난 검정바지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이현주는 “그것은 빳빳한 와이셔츠 깃 아래 어지러운 무늬의 넥타이를 매고 윤이 나도록 손질한 가죽구두를 신은 서울 놈들에게 통쾌한 일격이었다.”고 했습니다. 더듬거리며 수상소감을 전하고, 서울 온 김에 며칠 더 묵으며 구경이라도 하자는 이현주의 제안을 거절하며 권정생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칠복이라는 정신박약아가 있어. 나이는 열다섯인데 초등학교 일 학년 수준도 못 돼. 이 녀석을 얼마 전부터 가르쳤는데, 제법 일에서 십까지 쓸 줄 알게 됐어. 8자만 못 쓰고 다 쓰지. 서울 오기 전날 이름자를 가르쳐줬더니 무척 기뻐하더라. 잘하면 제 이름자 정도는 쓰겠어. 그 애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게야, 무척 …”

“형은 지가 젤 불쌍하면서 남들 불쌍하다는 말만 해!”라던 이현주는 황석영의 <장길산>에 나오는 이런 대화를 소개합니다.

“우선 상놈이 되어야 하지. 유생의 버릇이 추호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여. 자네 같은 이는 상인 동무들을 많이 사귀어야 하네. 백성들의 순박한 뜻을 배우지 않으면, 농사잡록이든 의술이든 활인이든 아무 쓸모가 없네.”

작가나 신학자나 사목자들에게 경계가 되는 말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당신을 동일시 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글밥을 먹고 사는 자들은 장일순 선생이 “바닥으로 기어라!” 했던 하심(下心)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정생처럼 동화를 썼던 이현주는 이렇게 말합니다.

“십 년이 넘게 동화를 쓴답시고 원고지를 없애며 천금 같은 지면을 더럽혀 온 나는, 여전히 이 땅의 아이들이 맨가슴으로 앓고 있는 고통과 ‘양팔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는 순 똥이다. 나뿐만 아니라 백성의 억울함과 고통에 제 몸을 담그지 않고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는 자들은 모두 똥이다.”

오늘은 어느 봄날 권정생이 번역해서 이현주에게 전해 주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바람에 지지 않고>라는 시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나도 그처럼 살고 싶은 부끄러운 고백을 남기며.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지으며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들어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고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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