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은 너무 길다, 식물정부라도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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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은 너무 길다, 식물정부라도 만들어야
  • 최태선
  • 승인 2024.03.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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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aberrantbeauty.tumblr.com
사진=aberrantbeauty.tumblr.com

작년에 이사 온 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원을 가끔 가게 된다. 그런데 그곳의 원장 의사는 나이가 많다. 몇 번 드나들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에 약간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한번은 진료를 받은 후 한 시간 정도 대화를 한 적도 있다. 지금도 뒤의 환자가 없으면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나이가 많아도 진료를 보고, 공휴일까지 일하는 그 원장이 부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그 의사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돈을 잘 벌면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이라 판단한다. 실제로 돈이 많으면 그런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대접을 받는다.

나는 내가 목사라는 사실을 그 의사에게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연금도 없고, 돈도 없다는 사실 정도는 그동안의 대화를 통해 그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하고(다른 사람들은 모두 환자분이다)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이 참 기이한 일이다. 나는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늘 솔직히 사람들에게 밝힌다. 그런데도 이런 대접을 받을 때가 있다. 내게 가난의 ‘아우라’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은 늘 가는 미장원에서 실습을 하는 한 미용사가 내 머리를 깎으며 “혹시 건물주 아니세요?”라고 물었다. 이곳에 드나드는 노인들 가운데 의외로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웃으며 건물이 아니라 내 집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 정말 건물주신가 보다.”라고 말하며 마치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말했다.

사실 내겐 어떤 권위도 없다. 사람들은 나를 버리거나 떠나는 이유를 다른 것에서 찾지만 사실 그렇게 되는 것은 마치 자연의 순리와도 같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그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고, 돈이 없으면 그 사람을 소홀하게 대하거나 하찮게 여기기 마련이다. 나는 늘 그것을 경험하며 산다. 그런데 내가 완전히 그런 사실을 까놓고 공개하면 사람들은 의외로 일종의 경외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경외심은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대세를 결정하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속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열정이 불이 일 듯 일어난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방편이라는 사실과 하느님의 정의가 진정한 평화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교회”와 같은 내용을 글로 쓰는 이유도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 운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막장에 다다랐다. 대한민국이 상위 소수가 더욱 많은 과실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 사회’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다. 1995년 이전 대한민국의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35% 정도를 차지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엔 이 수치가 45%를 훌쩍 넘겼다.

상위 1% 집중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하위 50%의 1인당 연간 평균소득은 약 1,234만 원인데, 상위 1%의 평균은 이들에 비해 무려 46배 많은 5억6000만 원이다. 우리나라의 상위 1%에 대한 소득 집중은 지난 10년 급격하게 증가했다. 반면 미국, 일본, 프랑스는 모두 불평등이 다소 완화되었다.

승자 독식의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과도한 사교육 투자도 세계에서 제일 낮은 출산율도 해결이 요원하다. 지나치게 기울어진 운동장엔 미래를 위한 건물을 세울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들과 정부 간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 혼란을 이용해 총선에 몰리는 국민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대단하다. 그러나 이 싸움의 본질은 가진 자들의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이 혼란을 통해 피해를 보는 것은 의사들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낸 후에도 봉급을 받고 있다. 교수들이 나서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도 의사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손해 볼 일이 없다. 정말 이러다 민영화가 되면 우리나라는 끝장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만일 여당이 정말 과반을 넘긴다면 우리나라의 무너짐은 가속화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추론이다.

아침이면 사거리마다 노인들이 우글거리며 교통정리를 한다. 하천변 도로에는 청소하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돈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걸 얻어먹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지만 그건 예전에 막걸리를 얻어 마시고 정부 편을 든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무지막지하고 몽매한 정권이다. 새삼 국가가 가지는 힘이 참 크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국민들이 정신을 차릴까.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의 돈을 훔쳐 탈출한 파렴치한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일이 멈출까. 그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그들과 내가 한 국민이라는 사실이 끔찍해서 한 동안 정치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썩어 문드러진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왔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도 눈물을 흘리셨던 일이기에 그래도 교회 이야기는 써오지 않았던가.

나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이미 내 글을 읽는 분들은 나처럼 이 정부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오늘 글과 같은 글을 쓰는 것은 이 나라 역시 내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들과 손자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번 선거가 마지막 남은 기회다. 이 기회에서 과반 정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조국 대표의 말대로 남은 3년을 여하히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탄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윤석열이 맘대로 할 수 없게 손발을 묶어놓아야 한다. 제발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들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희망 없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막연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무어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글은 논리조차 없다.

나는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 나라 운동의 선봉에 서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번 선거가 잘 치러져야 한다. 단 오십 석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탄핵 정족 의석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헌재의 판결이 날 때까지 식물정부라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에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이 지금의 내 마음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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