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소, 주방, 농장에서 노동하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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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소, 주방, 농장에서 노동하는 신부님
  • 주은경
  • 승인 2024.03.04 14: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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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5화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마돈나하우스의 데이비드 신부.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마돈나하우스의 데이비드 신부.

마돈나하우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존재는 신부님들이었다. 신부님 대부분이 목공소, 주방, 농장에서 노동을 한다. 언제나 함께 밥을 먹고 놀기도 한다. 저녁 휴식시간에 공동체 사람들 과 어울려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신부님도 있었다. 사제의 권위와 서열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돈나하우스에 소속된 사제는 대략 10여명. 매일 신부님들이 순번을 정해 아침 저녁 미사를 집전하는데 이 때가 아니면 겉모습만 봐서 누가 신부인지 알 수도 없었다.

마돈나하우스 신부님들의 또 다른 주요 임무는 영적 상담을 하는 일이다. 스탭은 물론 수련생, 게스트 누구나 신부님을 선택해 영적 상담을 할 수 있다. 영어는 못하지만 호기심 천국인 나에겐 누가 좋을까? 며칠 동안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밝게 웃으며 나를 환영해주었던 사람, 미사 때마다 주님에 대한 순수한 감동의 열기가 전해지는 신부님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키에렌 신부. 그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메인하우스 옆 건물의 작은 방에서 그를 만났다.

소박한 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작은 성모상이 전부인 방. 조명은 따뜻했다. 키에렌 신부는 얼굴이 빨간 아일랜드계. 눈빛이 맑고 선량했다. 순수한 테너 목소리.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첫만남을 가졌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지내면서 어떤 느낌인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영적 상담보다 인터뷰만 할 때도 있었다. 영어는 못해도 다큐멘터리 작가였던 나에게 인터뷰는 익숙하고 훌륭한 대화방법이었다. 질문은 짧고 대답은 길다. 이게 인터뷰 아닌가.

그와의 인터뷰는 마돈나하우스에 있는 두 달여 동안 몇 차례 진행했다. 나는 그 내용을 엠피쓰리에 녹음해 반복해서 들었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모두 번역했다. 이 글은 그 중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신부님이 마돈나하우스에 오기까지

“나는 8남매의 장남이에요. 아버지는 1958년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주했고, 1959년에 어머니를 만났죠.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가톨릭 신자로 교사였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어요. 집에는 신부님들이 자주 놀러 왔죠. 그분들의 삶이 훌륭해 보여 10대 후반에는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청소년기부터 깊은 영적 체험을 했거든요.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통해 주님을 느끼게 되었죠. 그러나 영적 체험을 한다고 해서 영적인 성장을 하는 건 아니었어요.”

청소년기에 영적 체험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꼈고, 자신의 삶은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경지다. 그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어떻게 숙성시켜 왔을까?

“고향 근처의 농장에서 기도하고 독서하며 일하다가 신학교에 갔어요. 1983년에는 철학 학위를 받았어요. 그때 영적 성장을 위해 공동체 생활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교구의 많은 사제들이 개인적인 생활을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맞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1987년에 동료 신학생이 마돈나하우스를 알려줬어요. 여기서 지냈던 경험이 있던 친구죠. 그의 소개로 처음 와서 한 달 정도 지냈어요.”

얘기를 나누다가 그와 내가 동갑임을 알게 됐다. 왜 동갑은 더 반갑지? 1987년이면 내가 인천에서 노동교육단체에서 일할 때인데. 그가 마돈나하우스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어땠을까?

“이곳에는 내가 갈구하던 것들이 많았어요. 당시에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마돈나하우스가 그랬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지내고 싶었던 나에게 마돈나하우스의 공동체 시스템은 인상적이었어요. 우리의 모든 노동이 신앙생활과 연결된다는 마돈나하우스의 비전 역시 좋았고요. 두 번째 게스트로 왔을 때는 8개월을 지냈죠. 이곳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주님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었어요. 이곳은 성모님에게 봉헌된 장소예요. 나는 성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성모님을 위한 기도를 생활화했죠. 하지만 그때 난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어요. 집에 돌아가 1년을 일하고 다시 돌아왔어요.”

 

마돈나하우스의 성모상
마돈나하우스의 성모상

거절할 자유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 순명의 삶

게스트로 한 달, 그리고 8개월. 두 차례 마돈나하우스에 살아보면서 이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확인했다는 사람. 그러나 신부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마돈나하우스는 다른 일을 맡겼다.

“그때 나는 사제가 되고 싶었는데 마돈나하우스에서는 먼저 평신도 스탭으로 일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12년 동안 평신도 스탭으로 일했어요. 그 중 5년 동안 에드먼턴, 리자이나, 화이트호스에서 거리의 빈민들을 위한 일을 했죠.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싶다는 나의 요청은 1994년에 허락되었어요. 토론토에서 5년 동안 사제 과정을 마치고 2000년에 신부가 되어 마돈나하우스로 돌아왔어요.”

신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먼저 평신도로 일하라 한다고 12년 이후에나 사제 교육과정을 밟았다니. 이것이 순명인가?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순명은 무조건적 복종과 어떻게 다른가?

“우리 공동체에는 상급자(superior)가 존재해요. 디렉터는 공동체 멤버들이 투표로 선택하는데, 주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공동체의 질서를 가져다준다고 여기죠. 우리가 그 사람의 요청에 ‘네’라고 대답하는 것은 결국 주님께 ‘네’라고 답하는 거고요. 하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말할 자유가 있어요. 이것은 매우 중요해요. 내가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어떻게 사랑을 베풀겠어요. 사랑에는 언제나 선택이 함께해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사랑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죠.

이곳의 게스트들에게도 말해요. ‘당신이 지금 식탁을 닦고 있는데, 당신이 노예라서 하는 일이 아니다. 당신에겐 선택권이 있다. 당신이 하는 일엔 사랑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우리의 순종은 열린 마음으로 하는 선물 같은 것이에요. 순종은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고 우리가 성장하게 도와주지요.”

그러나 거절할 자유가 있다 해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항상 염두에 둘 점이 있다고 한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일을 할 사람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인데, 내가 거절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같은 답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네’라고 했을 때의 결과와 ‘아니요’라고 했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야죠. 따라서 나는 내가 한 답변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가 문제이지요.”

알 듯 모를 듯하다. 나라면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기꺼이 ‘순명’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직업은 나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만나는 장소”라는 프레데릭 뷔흐너의 말을 좋아한다. 의미 있고 원하는 일이라면 힘들어도 기꺼이 선택했다. 그의 순명과 나의 선택은 맞닿은 점이 있을까? 의문을 뒤로 한 채 그가 평신도로서 빈민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물었다.

“마돈나하우스에는 캐나다, 미국 등 여러 곳에 필드하우스가 있어요. 나는 캐나다 에드먼턴의 급식소에서 스튜를 만들었어요. 음식을 만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입을 옷을 주고, 이야기를 들었죠. 리자이나에서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식당을 관리했어요. 화이트호스에서는 노숙자 쉼터를 운영했고요. 입을 옷을 주고 쉼터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왔죠.”

 

by Eichenberg, Fritz

가난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를 보다

노숙자 쉼터에서 평신도 스탭으로 일하면서 그에겐 어떤 특별히 기억이 있을까?

“하루는 식사시간이 끝날 때쯤이었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떴고 저는 식당 한쪽에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어요. 조금 취해 비틀거렸는데 슬퍼 보였어요. 나이 마흔 살쯤 됐을까? 그가 말했어요. ‘그리스도도 가난한 사람이었죠, 그렇죠?’ 그때였어요. 그 사람 뒤에 걸린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거리의 빈민들이 음식을 받으려고 줄 서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서 있는 그림. 그 사람은 그 그림을 보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깊이깊이 깨달았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 안에 존재하는구나. 주님은 이 가난한 사람이 우리와 이곳에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마돈나하우스에 오기 전 나는 토론토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친구 집에 이틀 머물렀다. 그 친구는 당시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 캐나다 정부가 운영하는 그룹 홈을 관리하고 있었다. 한국에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캐나다는 의료나 복지체계도 잘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캐나다에서도 빈민구제사업이 별도로 필요한 걸까?

“캐나다 복지시스템은 잘 되어 있는 편이죠. 하지만 언제나 틈새와 사각지대가 존재해요.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빈곤계층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계층이 있잖아요. 이들을 우리가 돕는 겁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에 모든 걸 맡기면 가난한 사람, 그리스도를 만날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 되죠. 직접 눈빛을 마주치는 기회가 중요합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에게 하는 선한 행동이 곧 그리스도에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버림받는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본다.” 이것은 1933년 미국에서 ‘가톨릭일꾼’ 운동을 시작하며 ‘환대의 집’을 열었던 도로시 데이의 정신과 통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며 누구든 환대하던 도로시 데이의 존재를 내가 알게 된 것도 마돈나하우스에서였다. 게스트들을 위해 영화를 보여준 것이다.

가난과 청빈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마돈나하우스. 이들의 삶이 어쩌면 절대적 기준에서는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지원 없이 모든 것을 기부에 의해서 운영하며 헌옷을 입고, 스스로 농장에서 재배한 음식물을 먹고, 커피는 일요일에만 허용되는 삶. 이들의 삶이 캐나다의 노숙자보다는 낫고 인도나 아프리카 빈민들보다 당연히 풍요롭다. 하지만 캐나다 서민의 생활보다 훨씬 단순하고 청빈하게 사는 것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노숙자를 돕기 위해 꼭 노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처럼 고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태도만으로도 배울 점이 있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나쁜 사회인지는, 그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넬슨 만델라의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돈나하우스의 태도는 불쌍해서 시혜를 베푸는 것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나의 경험이 좁은 탓이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가난한 삶, 가난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토록 강조하며 자신의 공동체 안으로 품어 안는 종교집단을 보지 못했다. 가난한 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마돈나하우스 사람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영적 상담자, 만남을 통해 배우다

신부님과의 첫 번째 대화는 저녁 7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절에서 스님과 차담을 한두 번 해 본 적은 있었지만, 신부님과 일 대 일 대화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이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더욱이 그는 내 마음을 읽었다. 내가 말문이 막히면 “말하려는 게 이거죠?” 하고 짚어주었다. 나도 그의 이야기 절반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신기했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배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안에서 우리는 예수를 만난다.” 이 말이 신부님과 대화하며 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직전 메인하우스 다이닝홀에서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 짧은 굿 나잇 기도를 할 때 내 마음이 기분 좋게 뛰고 있었다.

사흘 후 나는 키에렌 신부에게 영적 상담자(Spiritual Director)가 되어 달라 부탁했다.

 

인터뷰 번역: 김민경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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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 2024-03-10 23:43:25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처럼 고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태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귀하고 빛날까요?
"우리의 순종은 열린 마음으로 하는 선물 같은 것, 순종은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고 우리가 성장하게 도와주지요.”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