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운동, 그분께서 주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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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운동, 그분께서 주신 일
  • 가톨릭일꾼
  • 승인 2019.05.0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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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톨릭일꾼운동의 자기 평가

가톨릭일꾼운동은 대공황의 가장 극심한 상황속에서 뉴욕의 동부 빈민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시대의 필요에 따라 쇠하기도 하고 성하기도 하여왔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1980년대에 들어서며, 운동은 과거 역사보다 더 다양해지고 강력해졌다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운동이 성하게 된 이유는 가난한 이들의 부름에 직접적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가톨릭일꾼공동체들이 많이 늘어나고 바빠졌다는 것은 아메리카에 대한 고발이다.

공동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일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집이 있고, 시내 한 가운데에서 가톨릭일꾼공동체라는 간판이 달린 집 앞에 한 끼 식사를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면 더 좋은 일이다. 신문들은 이러한 집들에서 실마리를 잡아 고용에 있어서의 정의와 사회보장을 계속해서 요구하며, 핵무기의 증강을 항의하고, 농민들을 그들의 농토로부터 내쫓는 농업정책을 비판해 왔다.

관대한 인격주의 "사람을 사람으로"

가톨릭일꾼운동의 역사에는 두 가지 한결같은 맥락이 있어왔다. 하나는 개인의 인간적 요구(식량, 옷, 쉴곳)에 응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는 것이다. 피터 모린은 가톨릭일꾼의 역할이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로시 데이는 사람들의 강요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하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관대한 인격주의”를 외쳤다.

아메리카 전역에 있는 가톨릭일꾼공동체에서 봉사자들은 거리의 분노와 추함 가운데서 질서의 작은 섬들을 창조해 내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일꾼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작은 행위 하나라도 인간답게 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선택해서 들도록 하고, 정결하고 아름답게 식탁을 꾸미며, 웃는 낯으로 식사시중을 하는 것이다. 일꾼들은 가난한 이들이 비록 물질적인 측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들이 사람이라는 사실, 그들이 개성 있는 얼굴과 뭐든 자신이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꾼들은 탈진할 때까지 일한다

그러므로 운동 시작부터 도로시가 온갖 종류의 장애물을 대면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도로시가 이야기 했고, 오늘날도 여전히 운동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봉사자 모집과 훈련, 일꾼의 탈진현상 등이다. 봉사자들은 그들 주변에서 가난한 이들의 적나라한 요구를 너무나 잘 알고 또 지나치게 감동한 나머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탈진할 때까지 일하고 봉사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한 젊은 봉사자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치고 완전히 소모될 때까지 일한다. 그리고서 정신을 차리면 다시 돌아와 또다시 지칠 때까지 일한다.”

이 탈진의 현상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활, 끝없이 울려대는 현관 벨과 전화소리 투성이인 도시의 공동체들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술에 취하거나 얻어맞고, 강도를 당하거나 병들어 있다. 남자들은 일이 없고, 여자와 아이들은 있을 곳이 없다. 어떤 젊은 여성이 한 여름을 공동체에서 보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정말 비참이 끝없는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밀려듦을 막을 수가 없어요. 지난 주일 우리가 도와주었던 사람이 더 많은 문제를 안고 해결책도 없이 오늘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요. 오늘 한 여자가 왔었어요. 그 여자는 지금 집행유예 중이죠. 그리고 7개월 난 딸이 있어요. 어머니와 싸웠는데, 어머니가 자기를 던져 버렸대요. 옷가지와 아이를 정말로 길가에 내동댕이친 거죠. 그래서 아기와 그 여자는 길바닥에 있어요. 그 뿐만이 아니죠. 남편은 작년부터 부도수표 건으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 여자는 다시 임신했어요. 어떻게 남편에게 설명할 건지 모르겠어요.”

그 젊은 봉사자의 얼굴은 쳐지고, 이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야 말았다.

 

그래도 봉사하는 이유는? 

엄청나게 되풀이되는 비참함 앞에서 봉사자들을 계속 찾아내는 일은 생각하듯이, 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도시의 공동체들은 일하고자 하는 일꾼들, 남자와 여자들, 일주일에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요리하거나 감자 껍질을 깎고 냉동시키는 일, 옷을 정리하고 현관 벨에 대답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일꾼들을 수없이 구할 수 있다. 그들이 오는 이유는 대부분 다음과 같이 비슷하다.

“난 예수님이 참말로 이곳에 현존하신다고 느껴요.”
“성찬례가 이곳에서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하여 왔어요.”

“나는 사실 가톨릭이 아니라 유대인입니다. 허지만 지난 2년 동안 매주 화요일에 오고 있어요. 여기에서 난 즐거움을 체험하고 있어요. 거의 즐거움을 만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집과 이 식사는, 내가 이곳에 밥먹으러오는 사람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지요. 난 실패했어요. 난 결점 투성이죠. 어느 때는 아주 좋은 직장을 가지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나나 당신이나 얼마나 그 반대쪽에 가까이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무섭고 또 냄새가 무척 싫었어요. 겨울엔 나무냄새. 여름에는 땀 냄새 투성이였죠. 이제는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들도 나를 알아봐요. 진정으로 말하건대 그들은 내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그리워할 겁니다.”

농촌 공동체의 어려움

반면 농촌의 공동체들은 정반대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것 같다. 즉 오래 살아내는 일꾼들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농촌공동체가 떨어져 있고, 세상의 주류에서 벗어나 사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어려운 농촌 일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경험 없는 봉사자들이 짧은 시일 안에 도시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농장일은 힘들고 녹초가 되게 만든다. 많은 농촌공동체들이 유기농법을 택하기 때문에 의욕이 많은 친구들이 결국 한다는 일은 감자밭에 앉아 끝없이 벌레들을 잡거나 손으로 잡초를 뽑아내는 것이다. 겨울이면 공동체들은 가스나 전기기구를 별로 쓰고 싶지 않아 하므로 무척 추울 것이다. 대부분의 농촌공동체 일꾼들은 반드시 농장에서 살아야 하므로, 참말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결단이 아니라면 매력은 쉽사리 그 빛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일꾼운동이 제공할 수 있는 선물가운데 하나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땅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일꾼에게 있어 땅이란 계절의 흐름을 인정하는 기꺼움이며, 계절마다 할 수 있는 만큼 무엇인가 생산해 내는 흙의 참다운 존엄성, 해충의 역할, 초봄과 늦가을에 햇볕의 고마움 등을 깨닫는 것이다.

가톨릭일꾼 농장공동체는 가난하게 살고 있다. 그들은 철 지난 딸기를 먹지 않으며 연방 토지은행에 저축할 땅도 없다. 그들은 이번 주일에는 콩을 먹고 다음 주간에는 브로콜리를, 그러면서 가까이 있는 도시공동체의 스프 키친에 필요한 채소를 키우고 있다. 이건 어려운 생활이다. 많은 사람들이 땅의 낭만성에 매혹되어 살러오지만, 추수할 때까지 남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이런 어려움과 함께, 가톨릭일꾼운동은 오늘날 세상에 내어줄 것이 많다. 예를 들자면, 생명을 주는 가난의 체험, 신앙으로 채워지는 봉사와 자기희생적 사랑 등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구의 지배적인 문화와는 반대의 문화라고 하겠다.

 

형제적 사랑이 가난한 삶을 응원한다

가톨릭일꾼운동은 가난을 제시하나, 이상으로서 결핍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시 데이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듯이 :

“형제적 사랑은 자발적 가난, 자신을 비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이웃을 착취해서 얻을 수 있는 안락과 사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형제들이 필요한 것도 없어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는 안락을 즐기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비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것의 진실성과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비록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러므로 일꾼들은 가난한 손님들처럼 주어지는 옷을 입고 주어지는 것을 먹는다. 어떤 오래된 봉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난 감히 식사 때에 새 옷을 입고 나타나지 않겠어요.” 그건 의식적으로 선택한 가난이다.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주는 기쁨 중의 하나는 작은 것,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이나 포도주 한 병 등에서 느끼는 기쁨이다. 비싼 개인적인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필요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준다. 자발적 가난은 양심을 자유롭게 한다.

이 자발적 가난의 문제는 우리가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 인간의 권리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조차 빼앗기는 궁핍 그 자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 덜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공동체들이 손님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방법은 갖고 있지 못해도, 그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고, 그들의 인간성을 인정할 수는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 농담과 슬픔, 공동관심사, 존엄성 등이 개인에게 주어지며, 이런 현상은 정부의 피상적인 복지정책이나 행사에선 찾아볼 수 없는 체험이다.

일꾼들은 반창고 붙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가톨릭일꾼공동체는 근본적인 수술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반창고만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일꾼들이 밖에서 일할 때에는 다른 각도에서 공동체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꾼은 법적 도움을 주는 변호사로 일하고, 어떤 이는 문맹자를 가르치고 또 어떤 사람은 양로원에서 사목자로 일하고 있다.

모든 도시공동체에 집안을 지키고, 현관 벨에 대답하고 전화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어떤 공동체도 반나절이나 몇 시간 봉사하러 오는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오거나, 그룹으로 온다. 또 다양한 종파의 지역교회 구성원들도 오고 있다. 이런 그룹들은 수 개월 동안 봉사하러 오다가 정기적인 핵심그룹이 되고, 또 공동체가 불편하거나 그들의 생활양식에 도전을 받는다고 여겨지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돈이 부족하다면...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공동체를 돕는다. 어떤 사람은 어떤 특정한 공동체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특별한 즐거움을 포기한다. 놀랍게도 수표가 우편으로 도착되기도 한다. 그 수표들은 더 이상 돈이 없을 때 대부분 우리에게 주어진다. 여분의 돈이 없는 공동체에 건물들이 기부된다. 마이클 커완 한테 온 편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리고 있다 :

“이번 주에 우리는 가구와 세간살이, 커텐 등을 옮기느라 바쁩니다. 나이든 여자분들을 위한 나그네의 집이 새로 마련되어 이사 가는 것입니다. 지난 6월에 신문에 광고가 나와 있는 집을 보러 갔습니다. 현재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아주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난 돈이 한 푼도 없었지만 즉시 계약에 서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버지니아의 훌륭한 친구들이 5만 불을 보내주었고, 나머지 7만 불은 빌릴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이번 주에 이사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캔사스시의 공동체도 이 같은 체험을 갖고 있다. “우린 절대로 돈을 보내달라고 호소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항상 넉넉하게 살고 있지요.”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일꾼운동의 가치와 일꾼들의 정직함, 그리고 그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일꾼공동체, 그리스도교적 무질서 

가톨릭일꾼운동은 때때로 조직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고 또 어떤 공동체들에 대해서 그런 비난은 타당하다. 특히 식사 때에 보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는 공동체도 꽤 있다. 어떤 봉사자들은 조직의 결핍 때문에 공동체를 거부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동체들은 “그리스도교적 무질서”에 굳게 의지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떠한 공식적인 개념도 존재하지 않지만, 가톨릭일꾼공동체란 ‘다스리는 체제의 부재’를 의미하고, 모든 개인들이 봉사하기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의 내적인 부르심을 따르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실제 생활을 보면, 글을 쓰는 일을 택한 사람이 또한 장을 보러갈 수도 있고 저녁식사 후 화장실을 청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날엔 책임이 무거운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 다음날엔 가장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명령을 내리는데 익숙했던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아무도 그 명령을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가톨릭일꾼공동체는 일에 중독되어버린 사람들과 만성 게으름뱅이 모두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고 있다. 특히 초기 농장공동체에서는 만성 게으름뱅이들로 골치를 앓았다. 오늘날 많은 공동체들은 합의에 의한 정책결정 과정을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바라건대 모든 사람이 노동을 공평하게 나누어 짊어지기를 바라나, 아무도 강요당하지 않기를 원한다. 책임자도 없고, 오로지 하느님의 부르심이 각자의 노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도로시 데이는 그에게 다가와 “할 것을 일러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내었다. 도로시는 단순히 이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당신 주변을 돌아보세요.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세요. 내가 무엇이라고 말 할 수는 없어요.”

 

일꾼의 비타협적 평화주의

가톨릭일꾼공동체의 봉사자들이 일에 따라 나뉘는 것처럼, 그들은 정치에 의해서도 나뉜다. 가톨릭일꾼운동의 오랜 전통은 인기 없는 사건들을 대면하고 비록 친구들을 잃을지라도 끝까지 파헤치는 것이다. 그중에 유명했던 사건은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일꾼운동이 택했던 평화주의 입장이다.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동료 일꾼들에게.
주님이신 하느님,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이신 주님이여, 우리는 침묵해야 합니까 아니면 말해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말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 우리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쇄할 것이며 세상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입니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고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전쟁의 수행에 협조하기를 거부하고 평화를 위한 공동협력을 주장하는 노력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친구들과 정부의 관대함과 이해를 믿으며, 우리의 신문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치는데 계속 이용되도록 허락하기를 청합니다.“(가톨릭일꾼 회보 1942년 1월)

모린의 글, 혁명가의 지침서 

또한 회보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부담 없이 강조했기 때문에 예수와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로 오해 되었다. 때로는 세금을 거부하자는 운동도 전개하였고, 60년대 초기에는, 쿠바 카스트로 정부의 교육, 보건, 주택에 관한 노력에 긍정적 응답을 보내기도 하였다. 아마도 도로시 데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사진은 전 농민 노동자들의 파업 때에 찍힌 사진일 것이다. 나이 든 부인이 키 큰 경찰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서 도로시는 감옥에 갔다.

피터 모린의 <쉬운 글들>(Easy Essays)은 혁명가의 지침서이다. 인쇄를 거듭한 이 짧은 글들은 본질적인 그리스도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 30년대에 진보적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진보적인 책이다. 그와 같은 선배들 때문에, 가톨릭일꾼공동체의 일꾼들이 국방성 앞에서 피켓을 들고 미국의 중남미 정책을 비난하거나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세금을 무기에 오용하는 것에 항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핵무기를 실은 ‘하얀 기차’가 지나갈 때 철로 교차로에 앉아 밤을 새운다.

1987년 5월호 회보에서 팀 램버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33년의 가톨릭일꾼 회보는 노동법과 파업 그리고 노동자 조직과 지지선언문, 요구사항으로 채워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유럽의 황폐함을 보고하며 미국 내에서 양심적인 전쟁거부의 권리를 말하고 있다. 이어 피흘림에 대한 해독제로 평화의 신학이 요점정리 되기도 하였다. 1950년과 60년대는 민권운동과 동서냉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에 이르면 전 농민노동자들의 조직화 노력이 돋보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은? 지난 수년간 우리들은 핵무장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써 왔다. 또한 미국의 중남미 개입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었다. 지나간 수년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다시 전쟁의 때가, 그리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조짐이 우리 앞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겠다. 우리는 평화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목숨을 앗아가려고 계획조차 해서도 안 된다. 모두가 죄악이다.

어떤 특별한 무기장치나 군비축소 협상에 관하여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오직 일방적인 무장해제만을 제안할 뿐이다. 이런 의견은 스캔들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평화를 위한 홍보물을 돌리고 시위를 할 때에 우리는 어리석게 보이기도 하고, 소련의 첩자로 혹은 우유부단한 사람들로 오해받기 일쑤다. 그렇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무기소유국인 이 나라에서 그밖에 또 다른 방법이 있단 말인가? 적어도 우리는 씨를, 가장 작은 씨를, 우리들의 말로서 여기저기 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온 교회가 이 메시지를 선포 하는데 우리와 동조하지 않는가 묻는다. 그러나 우리는 대답을 알고 있다. 우리가 여전히 너무 순진하고 현실에 대하여 아는 것이 너무 적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씨앗들은 일꾼 공동체 내부에서조차 불일치를 일으켰다. 어떤 공동체들은 오늘날 동성애와 에이즈의 위기에 대하여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바라건대 하느님의 뜻에 관한 분별에 의하여 평화가 이루어지고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매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람들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헐벗은 이들을 입히며 집 없는 나그네를 재우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봉사자들, 농장과 도시의 공동체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 가톨릭일꾼들은 교회와 공동체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아마도 가장 뚜렷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매일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건 어떤 극적인 한 인물의 증언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봉사, 알려지지 않는 일꾼들의 증언이다.

많은 도시 고등학교의 그리스도교적 봉사 프로그램과 교회 단체들의 성인 프로그램들이 우리 공동체들을 찾아와 체험하는 것임은 이제 일상화되고 있다. 일꾼들이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일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방문객들은 이러한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두렵고도 엄청난 체험으로 느끼고 충격을 받는다.

방문객들이 다시 돌아오든 안 돌아오든, 그들은 접시를 닦고 콩 껍질을 까며, 웃고 우는 손님들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났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이 한 접시 가득 맛있는 음식을 담아준 모든 손님들 눈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만큼 행운도 얻었을 것이다. 도로시가 언젠가 이렇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오로지 가진 것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자. 우리가 이 일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이 일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199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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