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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로스가 전한 민중신학의 예수

기사승인 2019.04.24  1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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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해석학 II: ‘저자 중심’에서 ‘독자 중심’ 해석학으로-3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성서 속의 예수를 본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를 읽는 자신의 해석학적 문제설정을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성서 속의 예수를 본다”고 진술한다. 이때 ‘민중의 눈’은 성서 해석자가 자신의 시대를 읽는 준거다. 그런데 그것이 해석자 자신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이다. 그이는 해석자가 욕망했던 이가 아니라 무관심했거나 경멸했던 존재다. 요컨대 ‘그 타자’는 해석자가 속해 있는 세계의 담론의 질서에서 배제된 존재다. 그것은 그 담론의 질서, 그 시간 속의 일원인 타자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배제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것은 의식의 세계를 넘어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작동한다.

안병무 선생

그런데 해석자는 어떻게 그 타자의 눈으로 시대를 읽는다는 것일까? 원칙적으로 책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왜냐면 책은 문자들의 조합이며, 문자는 그 담론 질서의 골간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의 눈으로 보는 세계 읽기’란 독서 불가능의 세계(a world of illegibility)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민중신학자인 해석자는 불가능한 세계 읽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담론의 질서와 ‘불화’하는 읽기다. 딜레마다. ‘읽는다는 것’은 언어화한다는 것, 곧 담론의 질서 속에 일부가 된다는 것인데, 그 질서와 불화하고자 한다. 그래서 ‘민중의 눈으로 세계 읽기’는 동요하는 읽기다. 하여 그것은 ‘자기분열적 텍스트’다.

한데 그런 분열적 시선으로 해석자는 성서와, 성서 속의 예수를 읽는다. 그때 예수는 말한다. 아니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김지하가 감옥에서 만든 희곡 〈금관의 예수〉에서 얻은 착상에 의지해서 안병무는 민중의 눈으로 던진 질문이 콘크리트로 박제되어 실어증에 걸려버린 예수를 해방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예수는 민중에게 자신의 금관을 준다. 그것은 민중의 해방을 의미한다. 즉 예수의 구원행위는 민중을 향한 것이지만 그 구원행위는 민중이 그이를 콘크리트의 감옥에서 구출해 내야만 가능하다.

이 묘사는 순차적인 것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실은 동시적인 것이다. 즉 예수와 민중이 서로 함께 해야만 예수의 구원사건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안병무는 이러한 구원의 상호성 논리를 '민중메시아론'이라고 이름 붙인다.

 

숭대극회. 제47회 정기공연 “금관의 예수” 공연사진

그런데 왜 꼭 말하는 이가 민중이어야만 하는가. 신부는 안 되는가? 또 시민인 성도는 안 되는가? 안병무는, 그들이 예수를 콘크리트에 박제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계의 질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를 세계의 질서의 일부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세계의 질서와 불화한 존재인데 그들은 예수를 그 질서의 화신 아니 수호신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그렇기에 그 질서에서 배제된 존재가 예수에게 말을 걸어야 예수가 해방되고, 그 예수가 민중을 해방한다. 나아가 그 해방의 사건 속으로 부르는 신의 호명에 응답한 세계 내적 존재들은 그 구원사건에 참여할 수 있다. 즉 그들이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안병무 자신이 민중의 눈으로 세계를 읽고 그 시선으로 성서를, 성서 속의 예수를 읽는 것은 그런 신의 호명에 응답하는 행위다. 그렇게 자신과 같은 비민중은 구원사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안병무는 이러한 읽기 수행자를 민중신학자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해석의 엘리트주의를 해체하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민중신학자는 민중의 눈으로 세계를 읽고, 그 시각으로 예수를 읽는 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곧 민중신학자는 성서 해석의 전문연구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민중사건의 일원으로서 성서를, 성서 속의 예수를 읽는 자, 그렇게 해석에 참여하는 자를 말한다.

 

영화 <킬링 지저스> 중

〈마르코복음〉과 오클로스론

자 그러면 이제 성서 속에서 예수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예수에 국한해서 보면, 복음서에서 예수를 읽는 것에 관한 물음이다. ‘책이라는 은유’로 복음서를 읽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역사의 예수를 읽어내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는 ‘구술’에 주목했다.

물론 구술만이 예수를 읽는 유일한 매체는 아니다. 하지만 구술은 가장 손쉬운 매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구술은 ‘책이라는 은유’, 그것에 기초한 성서해석학의 바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은 더 오래된 담론 양식이며, 그 담론의 전승주체가 민중의 눈으로 성서를 읽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에 의하면 말이다.

우선 복음서 중에 구술문학이 있다는 데서 시작하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르코복음〉이다. 다른 복음서들은 구술문학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들 속에도 구술 텍스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술연구는 〈마르코복음〉만이 아니라 다른 텍스트들을 통해서도 수행될 수 있지만 〈마르코복음〉은, 적어도 1~9장까지는 전체가 구술문학이라고 해도 좋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를 통한 예수 읽기는 기존 성서해석학의 바깥에서 예수를 읽어내기가 가장 쉽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한국신학연구소, 2008

그런데 〈마르코복음〉의 수용자 공동체를 ‘오클로스’ 공동체라고 보는 다가와 겐조의 주장을, 안병무는 오클로스는 전승자이자 해석자이기도 하다는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수용한다. 나아가 이는 예수 당대에도 마찬가지다. 즉 예수와 오클로스가 더불어 일으킨 사건이 오클로스들에 의해 전승되고 그것이 전승군을 이루어 보다 큰 예수전승체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문서로 채록된 것이 〈마르코복음〉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나는 예루살렘의 수난 이야기를 다루는 10~16장은 오클로스 담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1~9장만을 오클로스 전승문학으로 본다.

그렇다면 오클로스는 누구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을 특징짓는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에 속하지 못한 자’다. 거시적 체제에서 미시적 체제까지 기성의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외부로 내몰린 자를 말한다. 그들을 가리키는 상투적인 대상은 매춘하는 여성, 세관원, 죄인, 병자 등이다. 이런 이들은 지배적 담론의 질서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그 질서가 부여한 서사를 공유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에피소드적 담론’ 혹은 ‘파편적 담론’으로만 실재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에 관한 긴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그들이 담론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들의 언어장애를 극복하고, 그런 장애의 체계에 의해서 훼손된 존재의 장애를 극복하고 긴 서사의 주역이 되었다. 이것은 민중의 주체화 사건이 바로 〈마르코복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코복음〉에서 역사의 예수를 읽어내는 방법론적 실마리를 얻게 된다. 이 복음서의 채록자는 저자성을 갖는 문학적 창작의 주역일 수 없다. 구술문학은 그 기억을 공유한 대중의 집단적인 예비 검열을 통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복음서는 그 시대 예수에 대한 대중의 집단기억이 들어 있다. 그런데 복음서의 기억주체인 복음서 공동체와 전승주체인 전승자 공동체, 그리고 예수 주변의 사건공동체가 모두 오클로스와 연관되어 있다. 즉 복음서 공동체와 전승자 공동체, 그리고 원초적 사건공동체의 구성원이 지닌 사회적 성격을 모두 ‘오클로스’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민중신학이 〈마르코복음〉 해석의 원리로 발견한 ‘경험의 유사성이 기억의 유사성을 낳았다’는 명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르코복음〉에서 역사의 예수를 발견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강의는 그런 가능성에 기초해서 예수를 읽어내고 그것으로 우리 시대의 역사적 개입의 신학적 준거를 발견해내려는 작업의 하나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김진호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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