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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가 앞서고, 제도가 뒷받침하는 교회를 바란다

기사승인 2019.04.22  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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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부활 대축일; 2019.4.21] 사도 10,34ㄱ.37ㄴ-43; 콜로 3,1-4; 요한 20,1-9/베드로와 요한의 부활체험: 제도와 카리스마의 긴장과 조화

1. 부활 시기가 시작되는 오늘부터 전례에서는 신약성경만으로 독서와 복음을 봉독합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책들은, 복음서를 비롯해서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편지들과 묵시록까지 전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체험과 증언이 교회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부활의 종교요 가톨릭 교회는 부활의 교회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시작이고 뿌리이며, 우리의 부활은 마침이며 열매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확신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 빈 무덤 체험입니다.

 

2. 오늘 복음의 상황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한 걸음에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이 체험한 바를 알려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여러 메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메시지들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왜 사도들이 아니라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었을까? 둘째,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 중에서 나이 많은 베드로가 나이 젊은 요한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왜 먼저 도착한 요한은 무덤에도 먼저 들어갈 수 있었는데 베드로를 기다려주었을까? 셋째, 요한은 베드로를 따라 들어가서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게 되었다고 했는데 무덤에 들어가서 베드로가 확인한 행동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이 역전되는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전해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일곱 마귀가 붙어서 시달리던 그를 예수님께서 도와주셨고 그래서 그는 마귀에서 풀려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분과 제자 일행의 시중을 들어드렸다고 합니다. 마귀에서 풀려났다는 것은 많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처음으로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그 다음 하느님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이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한다는 예수님 말씀의 주인공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용서받은 후 그분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수난 현장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무지막지한 폭력이 예수님을 괴롭혔을 때, 그는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을 것입니다. 로마 병사들이 그분을 쇳조각이 달린 가죽채찍으로 매질할 때는 물론, 몸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셔야 했을 때도 그렇고, 골고타 언덕에서 그 십자가에 양손목과 양발목에 대못을 로마 병사가 박을 때도 그랬을 것이며, 엄청나게 피를 흘리셔서 목이 탈 정도로 갈증이 심했던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힘들어 하실 때에도 그는 도대체 아무것도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로마 병사를 제치고 죄수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돌아가신 날이 안식일 전날이었고, 숨지신 시각이 해질 무렵이어서 시신을 그냥 돌무덤에 모셔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안식일 규정에는 피를 보거나 시신을 만지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염을 해 드리지도 못한 채 예수님께서는 피투성이된 채로 돌무덤에 모셔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안식일이 지나고 동이 트기 전에 아직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 시간에 무덤에 가서 그분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고 염을 해 드리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장정 몇 사람이 힘을 합쳐야 겨우 굴릴 수 있을 만한 큰 돌이, 무덤을 막아 놓았던 그 큰 돌이, 감쪽같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어렵지 않게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분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분의 시신이 도난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놀라서 사도들에게 달려가 알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하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 부활에도 가장 먼저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의 거리에 정비례해서 부활과의 거리가 정해집니다.

4. 베드로보다 요한이 더 젊었기 때문에 동시에 출발해도 요한이 더 먼저 무덤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일은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요한은 베드로를 기다려주었을까요? 여기서 요한은 예수님께로부터 사랑받던 제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요한이 지도하던 카리스마적인 공동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현장의 사람을 상징하지요. 현장에서 가장 먼저 위기의 신호를 포착하지만 그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들은 카리스마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현장의 부르짖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무덤에 도착한 요한이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현장이 요청하는 새롭고 낯선 행동양식에 적응을 합니다. 그 아마포는 시신을 감쌌던 천이기 때문에 시신이 없어졌음을 알 수는 있었고, 따라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보고가 사실임을 확인한 셈이었지만 교회의 권위와 제도를 상징하는 베드로의 판단을 기다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복음사가가 독자들에게 강조하고자 했던 제법 중요한 메시지가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카리스마적 공동체의 역동적 활력은 현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있지만, 권위와 제도의 판단과 인준을 기다려주는 영성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이 단순히 두 제자의 빈 무던 체험 보도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카리스마와 제도의 긴장과 충돌을 어떻게 복음적으로 조화시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 요한보다 늦게 무덤에 도착한 베드로가 들어가서 확인한 바는 결정적인 단서였습니다. 그분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는 흐트러져 있었으나 얼굴을 쌌던 수건은 따로 한곳에 잘 개켜져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것은, 적어도 그분의 시신이 무뢰한이나 도둑들에 의해서 도난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 질서정연하게 무언가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 주는 단서였습니다. 즉, 그분은 시신이 도난당해서 무덤이 비어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분은 부활하셨음을 믿게 해 주는 단서였던 것입니다.

뒤늦게 들어간 요한이 믿게 된 것이 바로 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한이 대표하는 교회의 카리스마와 베드로가 대표하는 교회의 권위는 충돌하지 않고, 공동체의 역동성과 제도의 안정성이 조화를 이루어 교회를 부활의 증인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6. 기성 사도단에 속해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박해자의 전력까지도 지니고 있었던 바오로는 스스로 사도로 자처하면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를 개척했습니다. 아무의 신원 보증도 받지 않고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카리스마만 믿고 선교해 나갔던 인물이 바오로입니다. 그가 요한에 앞서 초대 교회에서 카리스마적 공동체를 대표하고 대변한 일은 초대 교회가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만든 귀중한 포석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개척 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유다교의 한 분파로 남아 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만큼 바오로로 대표되는 선교적 카리스마가 소중합니다. 그런 카리스마를 지닌 바오로가 에페소 근처 콜로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기초이자 목표가 되는 지고한 영성을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7. 하지만 그런가 하면 베드로는 유다인들이 모여 사는 예루살렘을 지키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차분하게 증언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을 아직 기억하고 있던 유다인들에게 그분 활동의 숨은 의미를 부활의 지평에서 비추어 밝혀냅니다. 그분의 삶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함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그 진실성이 확실하게 밝혀졌고,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그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이 부활을 예고했었다는 것까지 증언 내용에 포함시킴으로써 구약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던 유다교의 신앙을 그리스도교화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8. 그리스도교 역사 이천 년 동안 숱한 카리스마적 공동체들이 출현했었고, 그 공동체들의 이단성 여부를 가리느라 교회의 권위와 제도는 신중할 대로 신중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신중을 기하는 바람에 시대의 징표를 제 때에 읽지 못해서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실제 신앙 현실 역사에서 카리스마와 권위의 긴장, 공동체와 제도의 갈등은 불가피한 인간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이 주는 메시지대로, 권위를 기다려주는 카리스마의 영성과 카리스마의 역동성을 인정해 주는 제도의 아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 부활을 증언하는 교회의 복음선포는 그런 영성과 아량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카리스마적 공동체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해야 하고, 권위적 제도는 이를 포용해야 하며, 카리스마적 공동체는 제도의 권위가 판단하는 바를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납득하고 믿게 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현장은 여전히 다급하게 위기를 알리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현대한국판 빈 무덤의 상황은 역사의 진실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작해서, 노동자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둘러싼 긴장,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느라 빚어지는 갈등과 긴장 등 긴박할 지경입니다. 여기서 부활을 증언하기 위한 카리스마와 권위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이기우 신부
서울대교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파견사제

이기우 신부 webmaster@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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