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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세상에서 바보로 살기

기사승인 2019.04.22  11: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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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우화>, 류시화 글,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연금술사, 2018

 

류시화의 <인생우화>에는 두 천사가 등장합니다. 신은 인간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줄고 어리석은 사람이 느는 것이 걱정되어 두 천사에게 사명을 줍니다. 한 천사에게는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아서 마을과 도시에 골고루 떨어뜨려 어리석은 자들을 가르치게 하라고 명령하였고, 두 번째 천사에게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모두 자루에 담아 데려와서 그들을 지혜로운 영혼으로 바로잡아 다시 세상으로 내려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영혼들이 많지 않아서 첫 번째 천사는 그들을 다른 장소에 골고루 옮기는 게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두 번째 천사는 어디에나 어리석은 영혼이 많았고 자루에 넣으려 하면 저항을 하고 발버둥을 쳐서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루가 가득 차서 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올랐지만 큰 자루를 들고 하늘로 날아가는 건 쉽지가 않았습니다. 산 정상을 넘는 순간에 천사는 자루의 무게 때문에 날개가 통제력을 잃어 휘청거렸고, 큰 소나무의 뾰족한 솔잎에 찔려서 자루 밑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루에 있던 영혼들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세상의 모든 바보들은 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됩니다. 세상의 바보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류시화의 <인생우화>는 17세기부터 동유럽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에서 가져온 소재에 작가가 창작한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인 폴란드의 작은 마을 헤움은 상상 속의 장소며 어느 시대에나 일어나는 일들을 만나게 해 줍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고 마음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요즈음 일상에서 만나는 일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내가 나라는 증거를 말해 주세요

헤르셀이라는 이름의 빵장수가 살았습니다. 헤움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남자였습니다. 뛰어난 제빵사일 뿐 아니라 철학자이기도 한 헤르셀은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곤 했습니다. 이 마을 남자들은 공중목욕탕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철학적 토론을 합니다. 우리를 우리 자신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인간은 모두 똑같게 창조되었다고 성경에 적혀 있는데 어떻게 각자 구분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굴뚝청소부가 답을 냅니다. 우리를 구분해 주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라고.

그런데 빵장수 헤르셀이 목욕탕 안을 둘러보니 모든 남자가 허리에 똑같은 흰 수건을 두르고 있어서 구분이 안 되었습니다. 만약 각 사람의 존재를 구분해 주는 것이 옷이라면, 그 옷을 벗으면 어떻게 되지? 이러다가 어느 날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 불행한 사태를 막을 방법을 찾아 오른쪽 손목에 붉은색 끈을 한 가닥 묶으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헤르셀이라는 표시야.’ '이게 내가 나라는 증거야.'

어느 날 외지에서 목수가 헤움으로 이주해 옵니다. 목욕탕에서 헤르셀을 본 그는 이 동네 목욕탕에서는 오른쪽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는 것이 규칙인 줄 알고 그도 그렇게 합니다. 뜨거운 증기에 몸을 맡겨 기분이 한층 좋아진 헤르셀은 탈의실로 걸어가면서 자신이 빵장수 헤르셀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목을 내려다보는 순간 끈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을 알게 됩니다.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은 한 낯선 남자를 발견합니다.

‘만약 저 남자가 나라면, 그럼 나는 누구지?’

“친구여, 나는 당신을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바로 나입니다. 아니면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빵장수 헤르 셀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빵장수 헤르셀만이 목욕탕에 들어갈 때 손목에 붉은색 끈을 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나에게 말 해 주시오. 만약 당신이 빵장수 헤르셀이라 면, 나는 누구인가요? 제발 말 좀 해 주시오. 남은 인생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오.”

헤르셀은 그 낯선 남자가 자신이 되고 자신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지위, 옷차림, 직업 등의 겉모습을 잃었을 때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는 사람은 우화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사모님과 좀도둑

오래 전 롯데잠실점 앞 아파트에 살 때의 일입니다. 매섭게 추운 날 밍크를 입고 명동에 있는 롯데본점에 장을 보러 갔었습니다. 평소 장 보는 방법은 필요한 물건만 꼭 집어서 내 눈으로 가격 비교 후 매장 점원의 안내나 문의 없이 값을 지불하고 재빠르게 나오는 식입니다. 그래서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불편해 합니다.

그날은 웬일인지 매장을 둘러보는 제 주변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점원이 상품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설명하는 겁니다. 저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고맙다는 인사와 혼자 장을 볼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다른 손님에게 일을 보라고 권했습니다. 여기저기 매장을 바꿔가며 상품을 보려고 하면 어느새 제 앞에 바싹 다가와 또 상품 설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들어 보지 못 했던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붙여가면서 지나치게 베푸는 친절이 못마땅했습니다. 아주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장을 다 보고 나오는 순간까지 짐 들어 주고, 문 열어주고, 90도 경례까지 하는 겁니다.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고 하지만 그날 그 점원의 친절은 지나쳤습니다.

롯데잠실점은 화요일이 휴관이라 월요일 저녁 늦은 시간에 가면 세일을 많이 했습니다. 청과물은 50% 정도 싼 값에 살 수 있어서 자주 이용했습니다. 마침 집 앞이라 트레이닝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 코너 저 코너를 돌면서 장을 보는 데, 한 점원이 제 주위를 맴돌면서 계속 부딪치는 겁니다. 혹시 내가 작은 상품이라도 주머니에 넣지 않나 감시하는 눈초리로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만나는 줄 알았는데 계속 반복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산하려고 카운터에 물건들을 올려놓으니까 그때서야 자기 일을 보러 다른 코너로 가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본점에서는 밍크를 입었기 때문에 사모님 대접을 받았고, 잠실점에서는 허름한 차림이라 좀도둑 취급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위, 직업, 옷차림 등 나를 꾸며주는 겉모습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럼 저는 사모님인가요, 좀도둑인가요? 사모님으로 보일 수 있고 좀도둑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저 옷차림으로 인해 다르게 보일 뿐 나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남을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며 삽니다. 바보라서 그러는 것일까요? 헤르셀은 빵장수라는 자기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표시를 했습니다. 표시가 사라지자 자기가 사라졌다고 공포에 빠집니다. 헤르셀은 바보 마을에 사는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똑똑하다고 하는 우리들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옷이, 지위가, 직업이 인간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자기반성을 하게 해 준 이 글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가르쳐 준 좋은 앞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단추 한 개

물장수 페이사흐는 아내 파이가와 함께 다섯 자녀를 데리고 아주 작은 뜰이 딸린 아주 작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파이가는 본래 잘사는 집안 출신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유일하게 상가 건물을 소유한 사업가고 그녀 어머니 역시 솜씨 좋은 의상 디자이너여서 벌이가 좋았습니다. 뜰이 있는 큰 저택에 살 정도로 부자여서 파이가와 결혼하는 남자는 운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파이가는 고아로 자란 페이사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직업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남자였습니다. 파이가의 부모에게는 충격을 넘어 재앙이었습니다. 사랑에 눈먼 두 사람을 뜯어말릴 수는 없어 결국 파이가는 자신의 사랑을 막는 부모와 결별하고 돈 한 푼 없는 페이사흐에게로 왔습니다.

물장수 페이사흐는 수입이 별로 많지 않아 손수건만한 뜰에서 채소를 많이 기르지도 못했고, 헛간이나 동물 우리조차 없어 큰 동물을 키울 수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의 삶은 혹독했으며, 허기를 해결할 식량을 구입할 돈 외에는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이사흐 가족은 전혀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작은 뜰과 작은 집에서 자신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재미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의 울타리 너머로는 언제나 웃음이 새어 나왔고 파이가는 늘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했으며, 페이사흐는 인내심 많은 아버지였습니다. 아이들은 비록 가장 가난한 축에 속했지만 누구 못지않게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키우던 닭 판 돈이 생기자 페이사흐의 셔츠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 한 개를 사기 위해서 가족을 데리고 자모시치에 갑니다. 옷가게 점원이 단추 한 개만 사면 그것만 새 것으로 빛나서 이상하게 보인다며 셔츠 단추를 전부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셔츠가 낡아 새 단추를 달 수 없으니 새 셔츠를 권하고, 셔츠가 낡은 바지와 어울리지 않으니 새 바지를 권하고. 페이사흐를 새 옷으로 입히고 나자 점원은 가족 전체가 그들의 가장에 비해 너무 누추한 옷차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파이가와 아이들에게도 새 옷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페이사흐의 손에는 달랑 동전 하나. 점원은 몹시 황당해 했습니다.

“이걸로는 당신들이 산 옷값에 어림도 없어요!”
“괜찮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 옷들이 필요 없어요. 그러니 도로 가져가세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단추 하나는 가져도 됩니다. 동전 하나면 이 단추를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요.”

페이사흐와 파이가와 아이들은 가게 점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는 단추 한 개를 손에 쥐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애초에 자모시치에 온 것은 단추 한 개를 사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헤움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들은 침묵 속에서 걸었어요. 마치 다른 가족이 된 같았어요. 모두가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후회했어요. 페이사흐는 인생에 실패했다고 느꼈고 파이가는 삶에 속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잘사는 친구들에 비해 자신들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느꼈어요. 모든 것이 단추 한 개 때문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한 자리에 앉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그 단추 없이도 잘 살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것을 밖에 버리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했어요. 그냥 버리기. 단순하고 실행하기 쉬운 해결책을 제시한 이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하기가 결코 쉽고 단순하지 않기에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지금 필요한 것을 확실히 알고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쓸모 있게 쓰는 데서 비롯됩니다. 불덩이를 계속 쥐고 있을 리가 없지요. 그냥 던지면 됩니다.

 

바보로 살기

정신지체 여학생 10 여명과 그룹홈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오전에는 교육장에서 한글 익히기, 숫자 알기, 주변 환경 적응하기 등 학습을 주로 하고, 오후에는 집에서 콩나물 다듬기, 걸레 빨기, 청소하기, 물건 정리하기, 밥하기 등 생활교육을 주로 하였습니다.

500원 어치 산 콩나물을 다듬으라 하면 200원 짜리로 만들고, 걸레 빠는 법을 익히는데 6개월이 걸리는가 하면, 쌀을 씻으면 반 정도는 흘려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심부름을 시키면 가게에 가는 동안 살 물건 이름을 잊어버려서 다시 오기를 수 번. 기억시키기 위해 쪽지에 적어주지 않아도 불평 없이 그 먼 가게를 오가며 심부름을 해냅니다. 열 번 정도면 성공합니다. 성취감에 기뻐하는 모습은 천사와 같았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우리 인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전적인 보호와 교육으로 큽니다. 차츰차츰 성장하면서 말을 안 듣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안 가르쳐 줘도 내가 다 안다는 거지요.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무시하는 말도 합니다. 맞고 틀림, 옳고 그름을 자신의 자로 잽니다. 그리고 판단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린이 같은 사람이 갈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지능이 조금 부족할 뿐. 그래서 습득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가르쳐 주는 대로 계산 없이 받아들이는 정신지체장애인. 사실 이 표현도 잘못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하느님 앞에서 정신지체장애인이 아닐까요?

똑똑한 사람이 많아 그런지 말도 많고 주장도 다양하지만 정작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갈수록 세상 살기 어려운 요즈음 총명하게 살기도 어렵지만 바보로 살긴 더욱 어렵습니다. 여기 45 편의 이야기로 꾸며진 류시화의 <인생우화>에서 가르쳐 주는 바보로 사는 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을 성 싶습니다.

수산나

 

수산나 webmaster@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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