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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렁뱅이 라자로 "모세와 예언자의 말로 충분하다"

기사승인 2019.04.08  15: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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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의 조연들-23

새벽바람에 그가 맨발로 뛰어 나오더이다. 그 허둥대는 꼴이란. 제가 몇 해째 이 집 문간에서 빌어먹었지만, 이런 날은 흔치 않은 일이죠. 그는 누군가 애타게 찾는 눈치였는데, 결국 문간에 걸려 제 앞에 나동그라진 연후에야 소란이 멈추었지요. 바닥에 엎어진 그가 저를 올려다보며 물었죠. “네 이름이 뭐지?”

그는 평소 한 번도 제게 눈길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써 눈길을 피해 서둘러 문간을 지나곤 했지요. 저 역시 그 집 대문 앞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한 자락의 동정을 구걸할 뿐, 종기투성이인 저를 그 집 앞에서 밀어내지 않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따름이었죠. 그런 그가 제게 처음으로 이름을 물어본 것입니다.

“라자로.”
그게 제 이름입니다. 제 대답이 입술에서 온전히 떨어지기도 전에 그가 제 손을 꽉 쥐고 안절부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저는 그를 밀쳐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본래 저 같은 사람에게는 손끝만 닿아도 부정을 타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그는 제 손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머슴을 불러 음식을 가져다주도록 명령했지요. 그날이 곧 제겐 잔칫날이었죠. 갓 구운 빵이 혀를 속여 넘기듯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부스러질 듯 마른 빵 부스러기만 주워 먹던 제 혀가 호사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람입니다. 그는 장삿속이 밝은 사람이어서 흥정도 잘하고, 돈 될 만한 사람을 알아채는 데도 눈썰미가 대단했다지요. 그런 사람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게 치근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한 인물이어서 제 애비한테 받은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도 배로 늘릴 줄 아는 재주를 타고 났습니다. 그런 그가 제게서 얻어낼 게 있을까요? 제가 돈벌이에 소용이 닿는 구석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그는 미심쩍은 얼굴로 힐끔거리면서 주린 배를 채우는 저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한숨을 쉬곤 했지요.

그날 저녁 마지못해 집 안에 제 잠자리를 마련해 놓은 그가 한밤중에 등잔을 들고 제 거처에 찾아왔었죠. 한참을 뜸을 들이며 제 안색만 살피던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먼. 지난 밤 자네 꿈을 꾸었네.”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입니까. 언제나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로 지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산다는 양반이 거렁뱅이 라자로를 꿈에 보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입니다.

꿈에 저승에 간 아브람은 지옥불에 떨어져 있더랍니다. 말을 잇는 중간에 손을 들어 냄새를 맡곤 했는데, 불바다에서 지글거리며 타들어가는 바람에 손끝에서 노린내가 나더랍니다. 고통 속에서 눈을 들어보니, 건너편에 아브라함과 제가 함께 있더랍니다. 거기에 서로 담소를 나누며 행복한 얼굴로 건너편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참에 아브람이 “그자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하고 하소연을 했더니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너는 살아있는 동안 온갖 좋은 것을 받았지만, 이 사람은 살아서 나쁜 것만 받았으니 여기서 위로를 받는것이다.”

아브람은 다급한 나머지 제 자식들에게 라자로를 보내 애비처럼 죽어서 불행을 겪지 않도록 경고해 달라고 다시 청했던 모양입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아브람의 청을 거절하며 “모세와 예언자의 말로 충분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불길이 다시 아브람을 덮쳐누르는데 화들짝 놀라 발버둥을 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깨어 한참 동안 잠자리에 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해 보았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는 꿈에서도 저를 하인 부리듯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익을 위해서만 고객을 섬겨왔지요.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못 본 체하고, 자신의 처지만 돌보았으며 가족들의 안위만 걱정했던 것이지요. 자신을 위해 물을 찍어 나르도록 저를 부리려 했고, 가족들을 위해 저를 그의 집에 보내달라고 청했던 것이지요. 아브람은 말합니다. “제 복락만 누리던 자에게 줄 위로가 하늘에는 없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가 깨어나기 전에 저는 그 집을 나왔습니다. 이 집에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새삼스러운 선심이 부담스러워 그 집 문간을 아예 떠나 가파르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란 사나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지긋한 눈길로 낫게 해주었고, 이 이야기를 예수에게 해주었더니 “주님께 영광… 땅에 평화!” 연신 읊조리며 곰곰이 제 말을 들어 주더군요.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한상봉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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