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따라 떠난 길에서 빛을 만나다- 동방의 박사 세 사람
상태바
별을 따라 떠난 길에서 빛을 만나다- 동방의 박사 세 사람
  • 한상봉
  • 승인 2019.03.25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서의 조연들-21
Dormition of the Virgin, with an Epitaphabout 1493Unidentified artist, German (Nuremberg), last quarter of the 15th century, Formerly attributed to Michel Wolgemut (German, 1434–1519)

“우린 그 빛을 보았다.”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빛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태양은 너무나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우린 다만 어둠 속에서 어둠을 물리치지 않으면서 어둠에 생기를 주는 별빛을 탐색합니다.

밤을 이해하는 자는 별을 이해합니다. 사막에 밤이 찾아들고 세상이 온통 먹빛으로 가라앉을 때, 별빛마저 없다면 사막은 너무 고요해 우리의 영혼을 질식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그때에 떠오르는 별빛은 마치 숨통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넘실거리는 모래바다 위에 은근히 빛나는 별빛은 숭고합니다. 나침반 없이 절망한 생애에서 희망의 한 소식을 전하는 보석입니다.

어느 한밤에 우린 사파이어처럼 밝고 푸르게 빛나는 큰 별 하나가 서쪽하늘로 꼬리도 남기지 않으면서 맹렬하게 날아가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그 별의 운행을 따라서 일시에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는데, 세상은 어둠 가운데 빛을 얻어 별이 멀어질수록 서쪽하늘은 더욱 밝아졌습니다. 그제야 동쪽하늘에 동이 트기 시작했지요. 뜬 눈으로 날밤을 지샌 우리 세 사람은 그날 꼭두새벽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우린 그 빛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으로 몸이 달아올랐던 것입니다.

우린 본래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이지 별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 별은 마치 증인을 불러세우듯 우리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별은 “나를 따르라”고 말하고 있었고, 우린 망설일 틈도 없이 호기심과 사명감이 뒤섞인 심정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유다땅에 이르니 온 고을이 이상한 별빛으로 술렁이고 있었는데, 동방에서 방문한 저희 때문에 소문은 더욱 무성해졌습니다. 현지에서 확인해 본 결과,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로마의 지배에서 나라를 해방시키고 헤로데 왕을 주저앉혀 백성들의 오랜 고난을 끝장낼만한 인물이 나타나리라는 예언은 어린 아이의 입에서도 흘러나왔습니다. 그 빛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베들레헴으로 길을 바꾸었는데, 정작 베들레헴은 평온했습니다.

밥 짓는 연기가 농막 사이로 흘러나오는 베들레헴에 황혼이 물들고 잠깐 만에 나그네의 앞길이 어두워졌지요. 그리고 다시 별빛이 땅 가까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은 허름한 농막에 기대어 지어놓은 마구간이었답니다. 짚더미 사이로 별빛이 스며들어오는 자리에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기가 그러하듯이 이 아기의 눈빛은 별빛을 닮아 있었습니다.

난세(亂世)에도 아기는 태어납니다. 난세일수록 세상에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절실하기 때문이지요. 이 가난한 부부와 아기를 위해 먹을 것을 가져다 준 것은 온밤을 지키는 양치기들뿐이었습니다. 밤에 더욱 깨어있는 자, 그들은 받을 복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잠들지 않고 어깨 들썩이며 새벽을 기다리며 가엾은 목숨들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이스라엘을 구할 메시아는 다른 예언자들이 그러했듯이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예감하지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불쑥 성령의 힘으로 일어나는 한 생각이 세상을 구원하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이 아기가 장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임을 보증할 수는 없지만, 그 부모의 눈빛에서 단호하면서 부드러운 기운을 느꼈습니다.

우린 그 밤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벌써 헤로데의 병사들이 그 밤에 태어난 아기를 찾겠다고 이 고을 저 고을 들쑤시고 다니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아기 아버지인 요셉에게 이집트로 가는 지름길을 일러 주었는데, 별고 없이 피신하였는지 걱정이 됩니다. 반듯한 턱을 가진 그 젊은 목수는 현명하게 처자식을 이끌고 길을 떠났겠지요. 밤은 깊고 길은 멀어도 마음속에 품은 별빛을 따라가 안전하게 꿈을 간직하였으리라 믿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