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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추의 노래, 죽어서도 죽지 않는

기사승인 2019.03.18  12: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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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종교심성으로 읽는 요한 묵시록-17]

[오늘의 성경]
요한 묵시록 14,1 - 5

노래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느날 문득 한 가객이 저잣거리에 나타났다. 그가 부른 노래는 하도 신묘하여 사람들은 한 곡조만 들어보고도 저마다 허리춤을 끄리고 돈을 던졌다. 그러면 가객은 고개를 가슴에 콱 처박고 있다가 부지깽이처럼 길고도 여윈 손을 뻗쳐서 돈을 긁어모아서 자리 밑에다 쓸어 넣었다. 밑천을 뽑으려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한 곡조 더 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그의 더럽고 추한 얼굴 보는 순간, 사람들은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을 일으켜, 가객은 몰매를 맞고 돈마저 도로 빼앗겼다. 추한 얼굴이 신묘한 노래를 덮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증오를 불러일으켰던 탓이다. 뱀을 징그러워하고, 구더기를 더러워하며. 호랑이를 무서워하며. 꽃을 어여뻐 아는 것이 사람의 정이고 보면 그 낯선 가객을 미워하여 대면 조차 하기 싫은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었다. 수추는 독백한다. "그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노래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가객은 수추(壽醜)였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신묘한 가락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젠 자신의 나라와 이름과 부모마저 잊어버렸다. 그가 살던 동네와 친구도 기억나지 않았다. 드디어 가락을 찾아내고 노래를 완성했으나, 그 순간에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수추는 제 얼굴을 감싸쥐며 부르짖었다. "내 온몸은 이제 마음만이 꽉 들어차 있는가 보다." 하고 더이상 저자에 머무를 수 없었던 수추는 혼자서라도 마음껏 노래를 부르기 위해 '사람들의 세상을 떠나' 강 건너 사원 빈터로 떠났다.

강 건너 절터의 계단에 앉아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부르면 그의 나직하고 힘차면서 구슬픈 노래와, 살아서 뛰는 고기의 꼬리처럼 펄떡이는 생명을 지닌 거문고 소리가 빈 사원에 널리 퍼졌다. 새들이 일시에 울음을 그쳤고 맹수들은 포효를 잊었으며 나무숲은 제 몸을 바람에 내맡기지 않고 오히려 바람과 타협하여 잠잠해졌다. 새들은 둥지를 찾기보다 사원의 돌담과 지붕과 마당 위에 가득히 내려앉아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날이 밝고 노래를 그치면, 수추는 물가에 앉아 제 그림자보다도 못한 용모의 실상을 비춰보면서 울었다.

이런 애증에 시달리던 어느 대낮에 수추는 노래를 부르려다 거문고 줄이 탁 끊어지며 울어대는 무참한 소리를 들었다. 이내 벌떡 일어나 거문고를 계단에 던져 부숴버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이 죽음 같은 휴식 속에서 수추는 비로소 노래만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미워했던 제 모습이 변화된 것을 알았다.

그가 물을 마시려고 시냇물에 허리를 구부렸을 때, 그는 환희의 얼굴을 만났다. 삶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었고, 뺨에는 땀이 구슬처럼 매달렸다. 이제 그는 모든 산 것들이 그러하듯이 만물의 소멸에 대하여 겸손하였다. 그가 자신을 추악하다 여긴 것은 자만심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의 삶은 그의 노래처럼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남이 자신을 까닭 없이 미워함을 두려워하였던 수추는 이제 부서진 악기의 잔해를 주워 모아 불을 살랐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노래

수추는 다시 저잣거리로 돌아와 거렁뱅이였던 문둥이 깨꾸쇠의 움막에서 살았다. 그가 짓무른 종기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면 입으로 종기를 빨아주었고, 그러면 깨꾸쇠는 이내 잠이 들었다. 그가 추위에 떨며 신음을 하면 뒤에서 감싸고 체온으로 몸을 녹여주었다. 날마다 나루터에 나가서 짐을 져 나르고 수레를 끌었다. 저녁이면 삯을 받아 떡과 고기를 사 들고 깨꾸쇠가 앓아누운 움막으로 돌아갔다.

밤마다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잔치가 있는 집이나 상을 당한 집에 찾아가 주인에게 공손히 청하여 조심스레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의 노래는 아늑하고 힘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정과 말할 수 없는 용기를 솟게 했다. 이제 수추는 추했던 제 얼굴을 모두 잊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저를 닮은 사랑스럽고 겸손한 사람들로 비쳤다. 아니 수추 자신이 그 사람들을 닮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그의 경쾌한 걸음걸이만 보아도 문득 마음이 평화로워졌고, 강변 나루터에 가면 언제나 기쁨을 주는 그의 콧노래라든가 휘파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곡조를 배워 모두들 따라 불렀다. 어느 봄날 거리 축제가 열렸는데 사람들은 수추에게 노래를 청하고, 다리 밑 오동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들어 주었다. 수추의 노래가 아픈 사람이나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고통을 씻어준다는 소문이 퍼져 온 동네 사람들이 새떼처럼 몰려들었다.

그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믿음을 싹트게 했다. 그의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나중에는 몸짓에서 몸짓으로 퍼져 나가 모든 사람들이 목청을 합하여 저자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깨꾸쇠도 눈물을 철철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누군가 그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끌어안았다. 

 

죽어서도 펄떡이는 수추의 혓바닥

사람들이 자꾸 모여드는 것을 보고 마을의 장자는 겁을 집어먹었고, 이윽고 장자가 수추를 잡아들였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너를 당장에 놓아 주리라."
"저는 살아 있는 한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이곳을 떠나 아무도 없는 데로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용서해 주지."
"저는 제 노래를 원하는 사람들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결국 장자는 그를 가두고, 악기를 빼앗아 밥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수추는 감옥에서도 계속 새로운 곡조로 노래를 불렀으며, 이 노래는 저자로 재빠르게 퍼져 나갔다. 장자가 수추의 혀를 잘라 장대에 꽂아 내 걸자, 수추는 목구멍으로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까마귀들의 부리도 그 혀를 뚫을 수 없었고, 혀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허공에서 선홍의 빛깔로 펄떡이며 살아 있었다.

마침내 장나는 수추의 목을 베어 거리에 효수하였다. 수추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다리를 허물고, 오동나무 밑둥마저 뽑아버리고, 깨꾸쇠를 강 건너로 쫓아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노래는 불려지고 있었으니, 그가 죽은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그리고 깨꾸쇠는 아직도 수추의 펄떡이는 혓바닥을 품에 지니고서, 새로운 새벽이 밝을 때마다 강변으로 마중을 나가는 것이었다.(황석영. <가객>요약)​

참된 노래를 위해 꿈꾸기

노래만이 아름다웠던 수추는 그 노래를 포기하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노래의 완성은 생의 완성에서 온다는 것도 알았다. 참된 노래는 민중의 열망에 부응하는 실천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 숱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미치광이가 아니라 예언자로 존경받는 것은 그들이 자기 백성들의 고난 속에서 함께 그 고난을 견디며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좌절하지 않고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참된 꿈이 아니다. 그리고 꿈꾸지 않는 자는 결코 예언자도 시인도 가객도 될 수 없다. 수추는 저자 사람들의 삶에 동참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신과 저자 사람들이 통합되는 것을 느꼈다. 이제 수추는 사람들을 닮고 사람들은 수추를 닮았다. 그러므로 예수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진리다. 나와 남이 구별되지 않고 온전한 하나임이 확인될 때, 세상 이치가 훤히 뚫리는 것이다. 박해도 고통도 슬픔도 죽음도 이 둘을 갈라놓을 수 없을 때 구원의 노래는 완성된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렇게 민중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그래서 로마와 유다 지배층이 협잡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듯이, 저자의 장자는 수추의 목을 베어 장대에 꽂았던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한 수추는 죽을 수 없다. 부활하여 깨꾸쇠의 마음속에서, 민중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움트게 하고, 언제든지 해방을 위해 저들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오늘도 깨꾸쇠는 수추의 펄떡이는 혓바닥을 품에 지니고서 새로운 새벽이 밝을때마다 강변으로 마중을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노래

그 이마에 어린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사람들, 십사만 사천 명이 산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묵시 14,1) 그 노래는 수추가 불렀던 그 노래였다. 추한 얼굴을 이제 다 잊어 버리고, 짐승이 다스리던 세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개선의 노래였다.

그 노랫소리는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을 가진 거문고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14,2). 그 노래는 아무나 함부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땅으로부터 구출된"(14,3) 사람들만이 그 노래를 배울 수 있었다. 탐욕과 질투와 이기심에서 해방된 사람들, 그래서 이젠 흠없이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사람들, 원로들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떳떳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만이 배울 수 있는 아주 새로운 노래였다.

그들은 욕정으로 몸을 더럽힌 일도 없으며, 그리스도 어린양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신명을 다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열매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선 도무지 거짓말을 찾아볼 수 없는 순정한 영혼들이었다(14,4-5). 적어도 문둥이였던 깨꾸쇠마냥 가련한 인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추처럼,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해야 했던 분의 말씀(혓바닥)을 가슴에 움켜쥐고 살았던 이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그 자유의 노래가 지금, 여기 귓전에 맴돌고 있다.

[마무리 묵상] 

호흡, 호흡입니다, 주님.
제 호흡을 잘 가다듬어야
천상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천상의 노래는 지상의 노래,
지상의 노래는 인간의 노래,
인간의 노래는
마음으로만, 정겨운 눈빛으로만
세상에 전달됩니다.
세상의 기운이 고르게 되어야
제 호흡도 고르게 되고
세상의 마음이 따뜻해져야
제 영혼도 밝게 빛납니다.
제 마음을 울리고
타인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노래 한 자락 부를 힘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느님.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한상봉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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