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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우리시대 우상을 향하여

기사승인 2019.03.12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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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3

시편 115장을 읽어보자: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어
원하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은
사람이 은붙이 금붙이로 만든 것,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런 것을 만들고 의지하는 자들도
모두 그와 같으리라.

우상숭배

사람들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을 숭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돈, 몰록신(재물신), 생산의 횡포는 우리 인간성을 훼손시킨다. 노동에만 매달리고, 노동의 생산품에만 집착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만든 생산품의 모습으로 비슷하게 우리 자신을 재창조해 간다.

우리는 경쟁하면서, 소유물과 이윤을 위해 싸우면서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됨으로부터 격리되어 버린다. 물질의 형태와 실재를 우리에게 덮어 씌우며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친밀함과 만남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말할 수도 없고 인간됨에 대하여 인식할 수도 없다. 인간관계, 행동, 질 등은 물질관계, 물질같은 행동, 물질같은 질로 격하되어 버리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는 우리가 믿는 우상으로 변화되고 있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이렇게 인간성을 잃어가면서도 어떻게 잃어가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상은 우리에게 “환각의 베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환각의 베일은 다르게 살거나 존재하는 방식들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생산품을 숭배하면서 그것들을 위하여 살면서, 그것의 질들에 의해 우리 자신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지닌 고유한 자유와 인간성으로부터 우리를 내쫓는 가짜 신을 우리 스스로가 창조해 낸 것이다.

우상숭배의 모든 형태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몰아내고 질서가 바로 잡힌 인간세계를 뒤집어 놓는다. 우상숭배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과 목표를 국가, 기술, 이념, 교회에 바치도록 만든다. 우상숭배에 대한 투쟁은 이미 우상화된 세계에 자주 침투하고 있는 왜곡들을 부서뜨리는 노력이다. 그럼으로써 정치, 종교, 철학, 경제구조가 인간을 굴레에 묶어놓기 보다 인간성을 살아나게 하는 구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도덕적인 분노

인간은 물건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억압과 불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킨다. 모든 인간의 표현들은 자율성과 창조적인 자기실현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분노의 근거나 합리화는 무엇인가? 왜 어떤 인간의 행동이나 어떤 사회체제는 도덕적으로 의분을 일으키게 하는가? 자본주의는 왜 나쁜가? 사람들이 착취되었을 때 왜 우리는 분노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봐야 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 도덕적인 열정도 도덕적 판단에 대한 체계적인 상대화 작업에 의하여 꺼져버린다. 따라서 도덕에 관한 상대화나 감정중심론은 기존하는 권력구조들을 합리화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도덕적인 투쟁들은 이름하여 “감정적인 문제들”이며, 합리적으로 혹은 정의로운 해결책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도덕적인 분노나 판단이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모호한 상태이다. 또 권력의 조직화와 투표의 숫자들이 도덕성을 양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올곧은 도덕적 확신은 보기 흉하고 기이하게 보인다. 그러므로 부끄럽지 않은 분노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비판과 함께 도덕적인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어떤 적극적인 표현과 이해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 형식은 철학적인 인류학이나 인간존재의 가치와 목표에 대한 표현 모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근거와 도덕적 원칙들의 결핍은 필연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수백만의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백러시아인들의 학살, 드레스덴의 폭격, 아우슈비츠, 북베트남 폭격, 수백만의 낙태, 사형집행 등이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전체적인 비판 분석, 도덕적인 분노, 구체적인 대안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존재가 결코 단순한 생산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으로부터 또한 예수 안의 우리 운명으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구체적이며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으로 세계와 현실과 인간을 이해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신뢰를 우리 희망의 궁극적인 근거이며 완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요구된다.

[원출처]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문화적 저항의 영성>, 존 프란시스 카바나 신부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1996년 3월호

 

존 프란시스 카바나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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