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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청년이 죽으면 민족도 죽는다."

기사승인 2019.03.12  12: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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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안창호 선생 선종 81주년

숭모하는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님(島山 安昌浩, 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 선종 81주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천한 ‘무실(務實)·역행(力行)·충의(忠義)·용감(勇敢)’의 4대 정신 !

70년대 암울한 시절에 많은 민중들을 계몽한 흥사단 강좌를 추억하며 100년 전 선생님의 말씀을 곰곰히 성찰합니다 !

“본단의 목적은 무실·역행으로 생명을 삼는 층의 남녀를 단합하여 정의(情誼)를 돈수(敦修)하고 덕·체·지 삼육(三育)을 동맹, 수련하여 건전한 인격을 육성하고 신성한 단결을 조성하여 우리 민족 전도대업의 기초를 준비함에 있음이라.”(1913년 흥사단 창립約法)

앞날은 불투명하고 오늘날은 너무 투명하여 혼란한 자유만끽의 시대에 도산 선생은 무엇이라 가르치실까? 70년대 암울한 시절 많은 민중들을 계몽한 '흥사단 강좌'를 추억하며 100년전 불혹의 선생님 말씀을 곰곰히 성찰합니다 !

백성들의 주인의식 성찰 !

"묻나니 여러분이시여, 당신은 주인인가 아니면 나그네인가? 오늘 사회에 주인 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대한 사람은 모두가 대한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상할 것이외다. 그러나 오늘 사회에서 주인다운 주인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主人)인가 여인(旅人)인가’ 동아일보, 1925.1.25.)

백성들이 걱정하는 공복들의 성찰 !

“정부직원은 인민(人民)의 노복(奴僕)이지만, 결코 인민 각개의 노복이 아니요, 인민전체의 공복(公僕)이다. 그러므로 정부직원은 인민전체의 명령을 복종하려니와 개인의 명령을 따라 마당을 쓰는 노복은 아닐 것이요. 그러니까 정부의 직원으로서 사우(私友 )나 사복(私僕 )을 삼으려 하지 마시오. 그러지 말고 공복을 삼으시오.

나는 여러 사람이 국무원(國務院 )을 방문하고 사정(私情)을 논하려 사사(私事)를 택하는 일을 보았소. 이는 크게 불가한 일이니, 공사(公事)를 맡은 자와는 결코 한담(閑談)을 마시오. 이것이 심상한 일인듯 하지만은 기실 큰 일이요. 금일은 정부직원이 아들이라도 아들로 알지 말고 사우라도 사우로 알지 마시오. 사우(私友)를 위해서 공사(公事)를 해함은 큰 죄입니다."(1920년 1월 3일 상해. 독립운동의 방략 6大事業 발표시)

민족 통일과 대동 단결의 성찰 !

“나는 이에 대해서 몇 가지로서 고하고자 합니다. 즉, 첫째는 과거의 감정을 망각할 것, 둘째 피아(彼我)를 일시동인(一視同仁)할 것, 셋째는 일만 표준하여 공평정직(公平正直)할 것, 넷째는 흉금을 피력할 것, 다섯째 공결(公決)에 열복(悅服)할 것 등이외다. 제군이 어떠한 이론을 진술하고 어떠한 안을 제출하든지 각각 그 자신이나 친구나 당파의 이해(利害)를 표준하여 외공내사(外公內私 )하면, 구하는 원만(圓滿)은 이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패망(敗亡)에 이를지니 그러므로 각각 자가의 이해는 절대로 희생하고 오직 일만 하는 순결한 마음으로 회의석상에서 공평(公平)과 정직(正直)을 주장하면 설혹 이세(理勢)로서 싸움의 치열함이 어떠한 정도까지 도달할지라도 아무 위해(危害)가 없고 도리어 회의 전체는 원만하여지고 대표된 자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 될 것이외다." (1922년, 국민대표회 연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1919년 10월 11일).

이 시대를 어루만지시는 말씀 !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훈훈한 기운이 없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남자도 여자도 우리 모두 다 서로 사랑하기를 공부합시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됩시다."
"절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도 죽는다."

 

앞줄 맨 오른쪽이 안창호.

도산 안창호의 말년. 왼쪽에는 여운형, 오른쪽에는 고당 조만식. 여운형과 조만식은 안창호의 말년생활을 끝까지 곁에 있었다.

안창호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방진선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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