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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기도는 영적 노동이다

기사승인 2019.03.05  23: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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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의 수요일; 2019.3.6] 요엘 2,12-18; 2코린 5,20-6,2; 마태 6,1-6.16-18/자선과 기도와 단식

[이기우 신부 강론]

오늘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오늘부터 파스카 성삼일 전까지 교회는 40일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그분의 부활을 경축하는 축제를 준비합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기 위하여 사순 시기를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 전례는 연중 시기의 주일 전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복음은 네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발췌하여 봉독하는데, 이는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노력하자는 취지입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전례는 재의 예식입니다. 지난 해 성지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던 나뭇가지를 모아서 태운 다음 그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나 이마에 얹는 이유는 이 잿가루가 참회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재를 받을 때 우리는 “사람은 흙에서 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회개하여 복음을 믿을 것”을 다짐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사람이 회개하여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근본 처지를 상기시켜줍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과 인생이라는 기회는 매우 소중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엄청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 역시 뚜렷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마귀의 권세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짓게 되는 죄가 인간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의 파괴력을 악이라 합니다. 이 악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느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시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세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심으로써 인생과 세상과 역사의 목표를 알려주셨으며 이를 위해 죄를 물리치는 모범으로서 몸소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고 하느님으로 부활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를 위한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인생의 의미와 목표를 알려주는 것이고, 이것이 그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사순 시기를 통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에도 실천해야 하지만 특히 이 사순 시기에 더욱 열심히 실천해야 할 과제는 오늘 복음에도 나와있듯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다교에서도 이 세 가지 과제를 종교적 성무로 실천해 왔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실천에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선을 베풀되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해 왔으며, 기도하되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기도해 왔고, 단식을 하기는 하되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침통하게 단식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 가지 과제의 초점을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해서 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으로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되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으로 베풀어야 하며, 기도하되 사람들에게 보이는 데서 할 것이 아니라 골방에서 하느님께 내밀하게 기도해야 하고, 단식하되 하느님의 뜻을 되새기고자 하는 정성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세 가지 종교적 성무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내가 알아듣고자 하는 영적 노동이어야 하며, 그래서 기도는 종종 단식을 수반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집중하기 위해서 몸의 기본 욕망을 채우는 일에 안주하지 않고 제한하고자 단식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절약된 몫을 자선하는 데 씁니다. 우리가 자선을 베풀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게 되면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는 대상은 그 가난한 이들이지만 영적으로 은총을 입는 주체는 우리 자신입니다. 물질을 나누면서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하느님을 믿고 의식하는 신앙인들에게서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될 때 죄의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단식하며 자선을 베푸는 참회의 힘으로 하느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것이 참회와 용서의 치유력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본연의 자세를 회복시켜 주는 사순 시기는 은총의 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십자가가 되고, 그분의 부활이 또한 우리의 부활이 될 수 있도록 사순 시기를 잘 보내기로 합시다.

이기우 신부
서울대교구, 영원한도움의성모회 파견사제

이기우 신부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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