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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을 만나러 떠날까요?

기사승인 2019.02.17  21: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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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영성가 토마스 머튼(1915-1968)을 떠올리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추억이 있습니다. 군대 병장 시절이었으니 1998년이었습니다. 군부대 생활이라는 게 워낙 단조롭기에 좋은 책 한 권 구해 짬짬이 읽는 게 더 없이 기쁘던 시절이었습니다. 군부대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고 신부님 집에 들러 차 한 잔 얻어 마시다가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을 빌려 돌아왔습니다. 세로줄로 쓰였고 제법 두꺼워서 꽤 여러 날을 공들여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는 초소 경계근무를 서고 돌아왔더니 군대 인사부에서 제가 읽던 <칠층산>을 압수해 갔습니다. 군대에 반입하는 책은 반드시 검열을 받아야 하는데, 검열 통과 도장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인사장교를 찾아가 군종신부님께 빌린 종교서적이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내무반으로 돌아오며 세계적인 문학고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사장교를 혼잣말로 실컷 욕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십년이 지난 요즘, 토마스 머튼을 알면 알수록, 그때 그 시절 군대 인사장교가 ‘결과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군대 검열관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머튼은 반전(反戰) 운동가였습니다. 1941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일본을 향한 전쟁포고를 결정한 다음 날, 스물여섯 살 토마스 머튼은 징집을 피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성덕을 택한 겁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에는 가톨릭 사회운동가 도로시 데이와 교류하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글을 <가톨릭일꾼> 신문에 싣습니다.

<칠층산>으로 만난 가톨릭 영성가, 토마스 머튼

지난 2015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의회를 방문해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데 공헌한 인물로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목사, 도로시 데이, 그리고 토마스 머튼을 언급했습니다. 4명의 인물 중에서 도로시 데이와 토마스 머튼은 다른 2명 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와 토마스 머튼을 공부하는 길이 바로 현대 가톨릭을 공부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도로시 데이가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였다면, 토마스 머튼은 수도원에서 기도하며 글을 쓰는 ‘영성가’였습니다. 서로 다른 반경에서 활동했지만 토마스 머튼은 도로시 데이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관상과 혁명이 결코 나뉠 수 없는 급진적인 두 갈래 양식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작가입니다. 머튼이 남긴 70여권의 저작과 수백편의 시와 글이 지금도 끊임없이 읽히며 연구되고 있습니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머튼은 독자층이 두텁습니다. 지금도 머튼의 책, 전기, 연구서, 논문이 가톨릭과 개신교 가릴 것 없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머튼을 세상에 알린 건 31세에 탈고한 자서전 <칠층산>이었지만, <칠층산>만으로 머튼을 기억하는 건 너무나 협소합니다. 현대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라고 불리며 백만 부 이상 팔리고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자서전 <칠층산>이지만, 훗날 머튼은 <칠층산>을 두고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평했습니다.

머튼은 평생 끊임없이 변화하며 성장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시작되는 시기에 전쟁 대신 성덕을 찾아 수도원에 입회한 머튼은 침묵과 기도와 글쓰기를 지속하면서 영성가로 성장합니다. 53세에 갑작스런 감전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머튼은 종교와 영성 분야 외에도 인권운동, 비폭력, 미소 군비경쟁, 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일깨우는 글을 남겼습니다.

머튼 내리읽기

최근에 토마스 머튼의 전기를 내리 두 권 읽었습니다. ‘짐 포리스트’가 쓴 <지혜로운 삶> (분도출판사)과 ‘헨리 나우웬’이 쓴 <기도의 사람 토마스 머튼>(청림출판)입니다. 짐 포리스트가 머튼의 인생을 저널리스트 관점에서 사실에 근거해 기술했다면, 헨리 나우웬은 머튼의 글을 면밀히 분석하며 머튼의 내면을 투명하고 세밀하게 잡아냅니다. 두 책의 각도는 다르지만 모두 훌륭한 전기입니다.

두 권의 머튼 전기를 읽으며 제 자신이 오래전부터 머튼을 사랑한 ‘팬’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책장 구석에서 <칠층산>(바오로딸)을 찾아 먼지를 털고 한 장 한 장 넘겨보았습니다. 군대에서 어이없게 압수당한 씁쓸한 기억에 제대하자마자 구해 읽었던 책이니 이십년 전부터 제 곁에 머물던 책입니다.

한참 장자(莊子)를 다시 읽던 2013년, <토마스 머튼의 장자의 도>(은행나무)를 구해 읽으면서 머튼을 다시 만났습니다. 작년에 한상봉 선생님의 사회교리 강의를 들으면서 참고도서로 구해 읽었던 <머튼의 평화론>(분도출판사)도 제 책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머튼의 저작을 각개격파로 띄엄띄엄 읽었지만, 이제 머튼의 전기를 읽고 나니 흐름이 한결 정리되면서 머튼을 향해 보다 한걸음 다가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욱 꾸준히 머튼의 글을 찾아다닐 것 같습니다.

 

머튼의 투명한 글쓰기 

저는 토마스 머튼을 크게 4가지 주제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머튼의 투명한 글쓰기입니다. 소설가 이청준은 <자서전들 씁시다>라는 소설에서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 자신의 것을 사랑할 애정이 없으면 자서전 발간을 단념하십시오"라며 자서전 쓰는 이의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머튼의 <칠층산>은 자서전의 훌륭한 표본입니다. 고백성사를 방불케 합니다. 너무도 투명하여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흐름이 그대로 드러냅니다.

여섯 살에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열여섯 살에 뇌종양으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후, 고아로 살아가는 머튼의 고독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공허와 공포 속에서 술과 여자로 젊은 날을 허비하던 방황도 드러납니다. 유럽 성당의 예술품과 고전 문학 속에서 이따금씩 마주친 하느님의 숨결도 드러납니다. 방황하던 젊은 영혼이 마침내 신앙으로 귀의하는 과정은 탄식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습니다. 켄터키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에 들어서는 순간을 표현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그의 발소리가 저 아래 마당을 건너 문간 집으로 가는 것이 들렸다. 그러자 거룩하고 평화로운 밤의 깊고 깊은 적막이 나를 애무하듯 안온하게 감쌌다. 침묵의 포옹! 나는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고독 속으로 들어온 것을 느꼈다. 그때 나를 감싸고 있는 침묵이 어느 목소리보다 더 강하고 더 힘 있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고요하고 말쑥한 방 안의 열린 창으로 따스한 밤공기와 함께 맑고 평화로운 달빛이 듬뿍 쏟아져 들어올 때, 나는 비로소 이 집이 참으로 누구의 집인가를 깨달았다."(<칠층산> 404쪽)

머튼의 뛰어난 글쓰기 실력은 영문학을 전공한 학생이며 작가로 훈련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수도회에 입회한 이후에도 영성을 키워가는 수련방법으로 글쓰기를 계속한 결과입니다. 머튼에게 글쓰기는 고독을 향해 걷는 과정이며 외로운 전투였습니다. 머튼의 영성은 글쓰기를 통해 느리지만 자라나기를 멈추지 않는 나무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성장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잠들 때까지 흘러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머튼은 자신의 내면을 세밀히 관찰하여 글로 남깁니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빛나는 순간 뿐 아니라 괴롭고 아픈 어둠의 순간마저도 글쓰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저녁기도 후 간이침대에 곧추앉아 기도했다. 나는 드디어 병고의 거짓되고 죽은 듯 잠잠한 고독 한가운데서, 침묵이 수면 중에 사라지거나 썩을 몸속으로 영혼이 가라앉으며 사라지는 그런 고독의 와중에서, 진정한 고독의 순간을 되찾았다."(<토마스 머튼의 영적일기> 450쪽)

하느님을 향한 이정표

두 번째, 머튼에게 주변의 ‘모든 것’은 하느님을 향한 ‘이정표’입니다. 머튼이 아직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 머튼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특히 친구 로버트 랙스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끊임없이 머튼을 독려하여 종교적 추구를 계속하도록 격려합니다. 랙스와 머튼이 주고 받은 대화 한 부분을 옮겨 봅니다.

랙스 : 자네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머튼 : 글쎄,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다고 해두지.
랙스 :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되겠다는 건 무슨 뜻인가?
머튼 : ......
랙스 : 자네 말은 자네가 성인이 되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머튼 : 내가 어떻게 성인이 된다는 건가?
랙스 : 원함으로써. (중략)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성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뿐이야. 자네가 하느님께 동의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자네를 창조했을 때 원하셨던 그 모습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믿지 않나? 자네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원하는 것뿐이야.
(<칠층산> 299~300쪽)

헨리 나우엔은 머튼이 랙스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집착하지 않는 모습에 주목합니다.

"그는 친구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받은 모든 것에 대해 매우 고마워했지만 그들에게 집착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기 친구들을 볼 때 자신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이정표로 보기 시작했다. (중략) 랙스는 머튼에게 참 소중한 친구였다. 머튼은 그에게서 자신이 침묵 속에서 경험했던 것을 발견했다. 머튼은 랙스를 타고난 신비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가 하느님을 침묵속에서 말을 건네는 분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기도의 사람 토마스 머튼> 75쪽)

1967년 머튼이 짐 포리스트에게 보낸 한 장의 사진이 짐 포리스트가 쓴 머튼 전기에 나옵니다. 사진 속에는 켄터키 시골 풍경 위로 육중한 건축 기자재 갈고리가 찍혀있습니다. 머튼은 사진 뒷면에 ‘유일하게 알려진 하느님 사진’이라고 적었습니다. (<지혜로운 삶> 211쪽) 머튼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세상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읽어내는 머튼의 영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독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다

세 번째, 고독 속에서 세상과 다시 만난 머튼입니다. 1941년 스물여섯 살에 수도원에 들어간 머튼은 1968년 선종하기까지 27년 동안 수도자로 살았습니다. 수도자로서 머튼의 일상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노동과 기도와 글쓰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머튼은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고 총명한 젊은이가 문득 가톨릭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수도원에 입회한 것이 머튼의 첫 번째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십수 년간 수도회 생활을 하던 머튼은 1958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하여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합니다. 1958년부터 머튼은 수도원의 고독에 매료되면서도 동시에 수도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깊숙이 몰입합니다. 머튼의 1958년 10월 일기 한 부분을 옮겨봅니다.

"루이스빌에 있는 4번가와 월넛 가가 만나는 모퉁이. 쇼핑 구역 한가운데에서 내가 저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는 자각으로 별안간 어쩔 줄 몰랐다. 즉, 그들은 나의 것이며 나는 그들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전혀 낯선 사람일지라도 서로에게 소원해질 수 없다. 외딴 곳에서 떨어져 있고 싶은 꿈과, 특수한 세계,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상상하면서 가상적 성스런 세계 안에 안주하는 거짓된 자기 고립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따로 떨어져 성스럽게 존재하겠다는 온갖 환상은 꿈이다. (중략) 낯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서로 내내 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전쟁도 증오도 그리고 잔혹함과 탐욕도 없을 텐데...... 하늘나라로 가는 문은 곳곳에 있다."(<지혜로운 삶> 142쪽)

이런 체험이 있은 후부터 머튼은 점점 더 수도원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빈번한 편지로서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도로시 데이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환대의 집’ 운영으로 빈민운동을 펼치면서 동시에 <가톨릭일꾼> 신문 발행으로 반전운동을 펼치던 가톨릭 사회운동가였습니다.

당시 미국 가톨릭 내에서 <가톨릭일꾼> 신문은 유일하게 전쟁 반대를 외치고 빈민을 양산하는 경제체제를 비판하는 언론이었습니다. 덕분에 도로시 데이는 많은 신자들로부터 공산주의자로 비난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튼은 달랐습니다. 1959년 7월, 머튼이 도로시 데이에게 보낸 편지 일부분을 옮겨봅니다.

"평화를 위한 당신의 증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노선에 따라 그 일을 시작한 것은 아주 합당한 것입니다. (중략) 충분히 명백하고 중요한 진리를 위해 투쟁하는 한 그리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한 당신은 하느님 앞에서 옳습니다."(<지혜로운 삶> 144쪽)

미소 냉전시대 시대에 전 세계가 전쟁과 핵무기의 두려움 앞에 직면했을 때, 머튼은 1961년 10월 <가톨릭일꾼> 신문에 <전쟁의 뿌리로서 두려움>이란 글을 실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전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며, 기도와 희생은 전쟁을 반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영성 무기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글이었습니다. 이 당시 머튼이 쓴 일기 한 부분을 옮겨봅니다.

"어쩌면 나의 영성생활이 전환점에 와 있는 것 같다. 아마 성숙해지고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풀리며 두려움이 사라지는 지경에 다가가는 것 같다. 익히 알려진 결정적인 전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하느님, 이 전투에서 부디 저를 보호하소서. (중략) 나는 이 나라에서 전쟁 폐지와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비폭력적인 수단의 사용을 위해 철저하게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여온 것으로 뚜렷이 드러난 몇 안 되는 가톨릭 신부들 중 한 사람이다. 따라서 함축적으로 폭탄, 핵실험, 폴라리스 군 잠수함뿐만 아니라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중략) 비폭력적 행동은 단지 무저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거룩한 지혜> 161쪽)

머튼의 비폭력 반전 운동은 교회 내부의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수도회 내부 검열에 힘겨워 하면서도 머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가톨릭일꾼> 신문과 여러 에세이를 통해 더 많은 반전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썼습니다.

머튼은 <후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라는 책을 탈고하면서 반전 메시지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려 했는데, 수도원 내부검열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수도자가 다룰 주제가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머튼이 아니었습니다. 교황 요한23세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희망을 찾은 머튼은 자신의 글을 보내 1963년 4월에 나온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머튼의 반전 평화론이 집약된 <후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는 한국에는 <머튼의 평화론>(분도출판사)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Thomas Merton with D.T. Suzuki

아시아 종교에서 관상을 배우다

마지막으로 장자와 불교를 사랑한 머튼입니다. 타인을 깊게 이해하는 길은 곧 자기 자신을 깊게 이해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종교를 깊게 이해하다 보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보다 풍성해지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머튼은 그리스도교가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종교의 전통을 이해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머튼은 아시아의 종교를 연구하여 <장자의 도>, <신비주의와 선의 대가들>, <선과 맹금>을 펴냈습니다. 1968년 불의의 감전사고로 사망한 일도 태국 방콕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 간의 대화가 주제인 종교 세미나에 참석하던 중이었습니다.

머튼의 아시아 사랑은 간디에서 시작됩니다. 십대 시절부터 좋아한 간디였습니다. 학창시절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공부하다가 중국 고대 철학자 장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로 지내던 중, 1956년부터 일본 선종 불교 학자인 D.T. 스즈끼의 책을 구해 읽으며 선불교를 주제로 스즈끼와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즈끼의 글을 읽으며 장자를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장자는 고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며 도교와 불교에 깊고도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머튼은 장자를 5년 넘게 연구하여 번역해 <장자의 도>를 책으로 냅니다. 머튼이 번역한 장자는 놀랍게도 원본에 가까운 번역이 아니라 머튼이 장자를 읽으며 느낀 영적 교감을 글로 쓴 결과물입니다. 그만큼 장자를 깊이 사랑한 머튼이었습니다.

헨리 나웬은 머튼이 장자를 만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봅니다.

"장자는 머튼의 진짜 스승이다. 그는 머튼에게 새로운 어떤 것도 가르친 바 없지만, 그를 일깨우고 그 자신의 내적인 모순이라는 장벽을 통과해 마침내 의식의 깊은 바탕에 이르도록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머튼이 자신의 책 <장자의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쓴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쓸 때 나는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그가 장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를 좋아하는 까닭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기도의 사람 토마스 머튼> 150쪽)

장자와 머튼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장자에게 궁극의 원리는 도(道)입니다. 장자는 도(道)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체험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머튼도 마찬가지입니다. 머튼은 그리스도교가 하느님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한계에 부딪쳤기에 이제는 하느님을 체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게 바로 머튼이 강조한 명상이며 관상입니다. 장자는 버리고 비우는 무위(無爲)를 강조했습니다. 머튼은 관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1967년, 머튼이 어느 강의에서 한 말을 옮겨봅니다.

"관상생활에서 관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중략) 도달하기 쉽지 않은 그런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우리는 진짜 즐길만 한 것, 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 하느님을 위해 찬양해야 하는 일상생활의 본질적이고도 참다운 경험을 간과하게 된다."(<기도의 사람 토마스 머튼> 161쪽)

머튼은 불교를 공부하면서 아시아의 눈으로 그리스도교를 다시 보았습니다.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아시아 종교를 공부하면서 ‘자기 비움’을 복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자기 비움’을 두고 장자는 좌망(坐忘), 불교는 무아(無我)라고 부르면서 대단히 중요시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자기 비움’은 고대 그리스어로 케노시스(Kenosis)라고 부르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중심에 자기(self)를 놓는 서양 문명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 케노시스를 뒷전으로 물러나게 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중요시하면 하느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머튼은 자기를 중심에 놓는 서양 그리스도교가 동양의 태도, 즉 자기 자신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동양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자기를 텅 비울 때 하느님의 충만한 빛이 드러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머튼은 아시아로 갔습니다. 1968년 12월, 방콕에서 동서양 수도자들의 연합 세미나에 참가해 ‘마르크스주의와 수도원의 이상’을 발표하고서 호텔 방에서 잠시 쉬던 중, 피복이 벗겨진 선풍기 전선에 우연히 감전사 했다고 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참으로 여러 모습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가난과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청년. 고독과 침묵 속에서 끝없는 글쓰기로 영혼을 수련한 수도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마침내 세상과 다시 만났고, 탐욕과 전쟁의 세상과 기어이 맞서 싸운 영혼. 아시아를 공부하면서 서양 그리스도교 전통이지만 어느새 잊혀졌던 ‘자기 비움’을 찾아내 복권시키려고 노력한 영성가. 하느님을 논리로써 설명하기보다 일상에서 침묵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는 관상과 묵상을 몸소 보여준 사제.

 

머튼을 따라가며 여행하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서 여행 가이드를 쫓아 다녀 본 적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접하는 지역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기에 더더욱 현지 여행 가이드를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여행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며칠 간 이곳저곳 걷다 보면, 비록 구슬땀은 연신 흐르고 다리는 조금 아프더라도 바다 건너 세상 구경하러 오길 잘했구나 싶습니다.

토마스 머튼을 읽는 시간은 마치 유능한 여행 가이드를 따라 세계 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유럽 관광지에서 여러 성당을 다니며 그리스도교의 유구한 전통을 설명 듣다가, 불연 듯 수도원 뒤뜰로 데려가 기도와 묵상이 무엇인지 강의도 듣고 체험도 해봅니다. 갑자기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전쟁터입니다. 포탄 터지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참호에 납작 엎드려 부들부들 떨다보면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은 그리스도의 평화와 양립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번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도교를 세운 옛 성인들과 은수자들을 만납니다. 어느 틈에 중국으로 건너옵니다. 대나무 숲 속 암자에서 눈이 맑은 수도자를 만나 차를 얻어 마시다가 차향에 취해 빙그레 미소 지어 봅니다.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만난 일상이 참으로 새롭습니다. 여행을 다녀와 보니 답답했던 가슴 속이 시원하게 뚫린 게 느껴집니다.

불과 두 권의 머튼 전기와 몇 권의 머튼 저서를 읽었지만,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토마스 머튼을 만나러 머튼의 저작을 찾아다닐 것 같습니다. 머튼이 보여줄 새로운 세계가 벌써 궁금합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함께 토마스 머튼을 만나러 떠나보실는지요?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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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webmaster@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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