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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길,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나의 길

기사승인 2019.02.17  21: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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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39]

나에겐 철학자의 길이 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제법 먼 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만화 속 빨강머리 앤이라도 된 듯 길가 나무와 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안부를 묻는다. 그 친구가 소나무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겐 ‘푸름이’다. 그 친구가 잡초인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겐 ‘하얀 미소’다. 그렇게 인사를 하며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길을 걷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발이 기억하는 대로 그냥 움직이고 있지만 돌아서 생각하면 아무 생각도 없다. 그냥 있기만 했을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오래 고민하던 철학의 구절들이 이해되기도 하고, 어찌 글로 적어갈까 고민하던 부분들이 정리되기도 한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낙서가 아무 것도 아닌 낙서일까? 어쩌면 그 낙서들이 모이고 모여서 나의 글이 되고 나의 말이 되고 나의 삶이 된다. 아무 것도 아닌 낙서들이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걷기인데 나에게 철학자의 길은 소중한 내 철학의 공간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철학자의 길에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마주한다. 누군가에겐 잘리고 베어져야 할 잡초도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겐 소중한 벗으로 다가온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오랜 글 속 철학이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여전히 남의 이야기일 뿐인데 무슨 소용일까? 고민하다 어느 순간 그 철학의 글들이 사실 이런 저런 인간 세상의 아픔을 적어간 것이란 사실을 깨우친 공간도 철학자의 길이다.

오래 앉아서 글을 적지만 결국 그 글이 되는 생각이 만들어지는 공간은 철학자의 길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보는 시간, 차디찬 바람이 따스하게 안아주는 그 철학자의 길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미친 헛소리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그 철학자의 길에서 나는 한 줌의 흙과 한 줌의 공기와 한 줌의 물이 이리 썩이고 저리 썩여 만들어진 나를 만나게 된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나’말이다.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치유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아픔이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다. 아픈 나를 아프다 알아 봐주는 공간이란 말이 더 적절하겠다, ‘아무 것도 아닌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위로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길가 누군가의 발에 애써 피운 꽃이 잘려나간 잡초, 나의 친구 ‘하얀 미소’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다. 책을 적는다 하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묻는다. 책을 만들어가는 나의 큰 기쁨을 모독해 버린다.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열심히 글 노동 중이라 하면, 얼마 버는지 묻는다. 나의 노동이 순간 헛짓이 되어 버린다. 책을 쓰는 것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줘야 하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데 말이다. 겨우 백년도 살지 못하는 흙 조금 물 조금 공기 조금 썩어있다.

다시 다들 산으로 강으로 바람으로 흩어질 존재인데, 잠시 주어진 삶이란 시간 속에서 그렇게 싸우고 싸우려 한다. 이기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서 기 싸움을 한다. 그리고 승리감 속에서 그를 만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면 “왜 그렇게 살아! 이 멍청아!” 독한 말을 토해낸다. 흔한 세상의 일이다. 사랑하는 사이지만 우리라기보다는 서로 남이다. 혼자 살기 불편하니 만난 남이다. 더불어 사는 것 자체도 성가시다. 나의 옆, 모든 것이 성가시고 짜증이다.

‘하얀 미소’가 나에게 말한다. 바람 한 줌, 공기 한 줌, 흙 한 줌이 자신에게 내어준 작은 삶에 고맙다고 말이다. 바람이 씨앗을 날리게 해주어 고맙고, 비록 차가운 비지만, 내어주는 생기가 고맙고, 자신을 먹어 버리는 녀석들도 자신을 먹어 여기 저기 똥을 싸주니 고맙다고 말이다. 자신도 누군가 싼 똥을 거름으로 시작했다고 말이다. 나의 지금을 위해 내어준 수많은 고마움에 고마워하며 기꺼이 자신의 마지막이 참된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는 것이 고맙다고 말이다.

‘하얀 미소’는 지금 없다. 차디찬 겨울에 녀석은 누군가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있음을 내어 주었나 보다. 아무 것도 아닌 하얀 미소에게 배운다. 원래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에 굳이 무엇이 되려 노력말자고 말이다. 그냥 더불어 살다 그렇게 죽어가자고 말이다.

의미 없는 낙서, 글인지 그림인지 아무 생각도 담지 못하는 낙서들이 모이고 모여서 작가가 되고 철학자도 될 것이다. 그 낙서들이 고마운 벗들이다. 나를 위해 소비된 소중한 친구들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해 밥을 내어주는 아내와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밥과 반찬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닌 나도 아빠라며 웃어주는 아이들, 힘들 때 기꺼이 콩나물 가득 든 라면을 내어주며 같이 먹자던 친구, 쉼 없이 날 응원하는 부모님과 동생, 밤새 글을 적다 마주하는 새벽의 첫 햇빛...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고마운 나다. 나는 하나가 아닌 이 많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쌓인 덩어리다. 빚 덩어리다. 저 작은 풀도 나도 결국 그렇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다.

철학자의 길에서 나는 오늘도 배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하느님은 나에게 하얀 미소로 작은 미소의 소중함을 알려주신다. 내 일상의 작은 피정 공간, 내 일상의 작은 선생님들이 가득한 공간, 오늘도 차다운 바람이 따스하게 날 안아주는 철학자의 길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유대칠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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