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장 자캐오 "고맙다, 돌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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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장 자캐오 "고맙다, 돌무화과"
  • 한상봉
  • 승인 2019.02.1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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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조연들-16

우리 집안은 대대로 키가 작아서, 저 역시 동네 아이들로부터 ‘난장이 자캐오’라고 놀림을 받아가며 자랐지요. 처음엔 엄마 아빠 원망도 해보았지만, 그분들인들 도리가 있겠어요. 식구들이 장터에 나가면 다들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낯이 뜨거워지고, 멀리서 아이들이 숨어서 손가락질하는 걸 못 본체하던 날들이 수없이 많았지요. 게다가 집안이 궁벽해서 갈아먹을 땅 한 뙈기 받은 게 없고, 그렇다고 변변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식구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바깥 출입을 삼갔습니다. 물론 다른 이웃들도 웬간해선 우리 집에 마실을 오지 않았죠. 얼굴 마주쳐봐야 서로 불편하고, 불편한 일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우린 그런대로 조용히 살았습니다. 이럴 때 ‘숨어사는 외톨박이’란 표현이 썩 어울리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그 시절엔 잿더미 속에 묻어둔 말 못할 분노 같은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람이 불면 가끔씩 재를 들추고 그 숯덩이가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지요. 그 불꽃은 이따금 외롭다, 외롭다, 발음하다가 사그러지곤 했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산다는 점에선 모두가 제 땅에서 유배된 자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시 한 번 유배된 공간에 유폐되어 살아야 했던 저는 목숨을 아예 꺼버리지 않고 ‘생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투쟁인지 잘 압니다. 그래서 남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마다했던 세리가 되었습니다. 어차피 제 겨레붙이에게서 조롱을 받는 족속이기에, 그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그 후론 악착같이 돈에 매달렸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론 돈을 멸시하면서도 속마음으론 돈 앞에 주눅이 들곤 하더군요. 돈은 숨통도 열고 밥통도 열어줍니다.

더러는 눈 한 번 질끈 감고 옆구리로 들어오는 뇌물조차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누군가 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제 곁엔 예전보다 갈롱스럽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돈을 두고 맺은 관계는 돌아서면 땅바닥에 더럽다! 침 뱉는 관계가 되지요. 다 알면서도 성격 좋은 사람처럼 웃으면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서로 다리를 걸고 걸리는 처세술을 익혀왔지요. 그래요, 삶이란 비열한 것, 우린 모두 피할 수 없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뱅이들이었고, 그들은 아쉬울 때마다 내게 굴욕적인 태도로 부탁을 넣곤 했지요. 난 난장이처럼 키가 작았지만, 이젠 아무도 어린시절에 내가 겪는 수모를 다시 겪게 하지는 않았지요. 기실 그건 나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돈을 두려워했을 뿐이지만요. 저는 처음부터 남들에게 존경받거나 마음으로 존중받기를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려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제가 많이 약해졌나 봐요.

그러던 어느날 이곳 예리고에 예수란 분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거리로 나가 보았습니다. 대단한 예언자라고 하던데, 워낙 군중이 많이 몰려 그분 얼굴 조차 뵐 길이 없었습니다. 역시 저는 그 틈에 끼일 자격조차 없었던 것일까요? 그분에게로 가는 길이 제겐 막혀 있었고, 내 작은 몸뚱이는 한번 저를 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분에게 뭘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리도 내 몸뚱이가 야속해 보였는데, 마침 저처럼 쓸데 없는 ‘돌’무화과가 그분 가시는 앞길에 서서 저를 부르는 것 같더군요. 옳지!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네가 나를 구하는구나, 생각했죠.

아, 그분, 나무 위에 올라와 앉은 저를 보자마자 “자캐오야!” 제 이름을 불러주셨던 분. 그분이 오늘은 제 집에 머무시겠다고 먼저 말씀하시더군요. ‘제 집에’ 말입니다. 백주 대낮에 다른 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제 집에, 죄인의 집에 손님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때 전 뭐든지 주고 싶었습니다.

그분처럼 저도 그동안 저를 무시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그들이 손을 벌리기 전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속여 먹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아주리라, 약속하면서도 얼마나 행복한 하루였는지요. 그분을 만나서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 열린 까닭입니다. 그렇게 저와 제 집에 구원되었음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돌무화과 나무야, 고맙다! 속으로 축복하며 그분의 이부자리를 직접 펴고 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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