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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 "전쟁은 범죄, 평화로"

기사승인 2019.02.17  2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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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코-46

프란치스코 교종은 권고문 <복음의 기쁨>이 사회교리 문헌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공동선과 사회 평화’의 장을 따로 마련했다. 여기서 교종은 “평화는 단순히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 평화는 사회의 일부가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여 얻은 화친이나 단순한 폭력의 부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가 가난한 이들을 침묵시키거나 구슬리는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려는 구실로 쓰인다면 이는 거짓평화입니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거리낌 없이 고수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부의 재분배, 가난한 이들의 사회통합, 인권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배부른 소수를 위한 잠시뿐인 평화나 허울뿐인 서면합의를 이룬다는 구실로 짓누를 수 없습니다.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은 자신의 특권을 좀체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안위보다 훨씬 드높은 것입니다. 이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 218항

프란치스코 교종이 세계평화를 위해 내놓은 기준 가운데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는 원칙이 특별히 팔레스타인을 공간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교종은 <복음의 기쁨>에서 “사회 정치 활동에서 보는 잘못들 가운데 하나는 공간과 힘을 시간과 진전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라며 “공간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이 공간들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어 두려는 무모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사진출처=pixabay.com

교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안에서 새로운 진전의 열매를 맺도록 다른 사람들이나 단체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을 우선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는 원칙도 의미심장하다. 교종은 “갈등 앞에서 어떤 사람은 그냥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제 길을 가거나 갈등 속에 들어가 포로가 된 채 방향감각을 잃고 그들 자신의 혼동과 불만을 제도에 투사하여, 일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교황은 제3의 길을 제시하는데, “갈등을 받아들여 해결하고, 이를 새로운 전진의 연결고리로 만드는 것”이라며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라는 성경구절을 덧붙였다. 한편 이런 평화는 ‘협상’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화해”임을 강조했다. 덧붙여 교황은 2012년 콩고 주교회의가 발표한 국가안전상황에 관한 메시지를 제시했다.

“우리의 민족적 다양성이 우리가 가진 부요입니다. ...... 오로지 일치를 통하여, 마음의 회개와 화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 역시 <사목헌장>(Gaudium et spes, 1965)을 통하여 평화 문제에 관하여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인류는 참된 평화를 찾아서 새로이 회심하여야 하며, 평화의 건설자들은 “하느님이 아들이라 불릴 것이므로”(마태 5,9) 행복하다고 선언한 복음의 메시지가 새로운 빛을 발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공의회는 “진실하고 숭고한 평화의 뜻을 해명하며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하고, 평화의 주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정의와 사랑에 뿌리박힌 평화를 확립하고 평화의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도록” 열렬히 호소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언급했듯이, <사목헌장>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정의의 실현이라고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당부한 더 완전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평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평화는 한 번에 얻어질 수 없으므로 언제나 꾸준히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상의 평화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생겨나며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모습이며 결실이다. 육화하신 성자께서는 평화의 임금으로서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한 백성, 한 몸 안에서 모든 사람의 일치를 회복시키셨으며, 당신 육신 안에서 미움을 죽이시고, 부활하시어 영광을 받으시고, 사랑의 성령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부어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진리대로 살면서(에페 4,15 참조) 참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치하여 평화를 찾아 건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권리를 옹호함에 있어 폭력을 쓰지 않고 약자에게도 가능한 방위 수단을 택하는 사람들을 동일한 정신으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단, 그 방위수단이 타인이나 타 공동체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죄인인 한, 전쟁의 위험이 인간을 위협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러하겠지만, 인간이 사랑으로 결합되어 죄를 극복한다면, 폭력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민족들은 칼을 들고 서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아니하리라’(이사 2,4)고 하신 성경의 말씀이 채워질 것이다.”(사목헌장, 78항).

공의회에서는 “전쟁 행위는 모두 다 하느님과 인간 자신을 거역하는 범죄이므로 단호히 단죄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말하며, 힘의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군비경쟁도 진실한 평화의 길이 아니며 오히려 전쟁요인만 증대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군비경쟁은 인류의 막심한 상처이며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해치는 일이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그릇된 희망에 속지 말아야 한다. ...... 현대가 지닌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렇게 경고하면서도 굳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교회는 현대를 향하여, 기회야 좋든지 나쁘든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바오로 사도의 메시지를 전하며, 마음을 고치기 위하여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2코린 6,2)이라고 외치고자 한다” -《사목헌장》 82항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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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webmaster@catholicworker.kr

<저작권자 © 가톨릭일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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