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남자도 사제로 세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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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남자도 사제로 세운 적이 없었다
  • 한상봉
  • 승인 2018.12.2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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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코-40

예수는 여성들과 사귀되, “천한 인생”들을 비롯하여 불결한 여성들, 매춘부들, 사마리아 여인처럼 따돌림 받는 여성들과도 교류를 가졌다. 이 점은 그분의 적들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예수는 하혈하는 여자가 당신을 만지도록 허락했으며, 여자에게 머리털로 자신의 발을 닦도록 내어주고,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분을 함께 따라 다녔으며, 요한복음을 보면, 남자들이 한 사람만 빼고 모조리 도망쳤을 때도 그분을 떠나지 않고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 세 복음서에서 예수의 빈무덤을 맨 먼저 발견한 사람들은 갈릴래아 여자들이었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도 그들이었다.

 


왜 예수께서 여자를 사제로 세우지 않았을까?

여기서 우리는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여자를 사제로 세우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남자도 사제로 세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초기교회가 수행했던 사목직분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데 사도들, 복음의 일꾼들, 예언자들, 사목자들, 원로들, 전도자들, 교사들, 목자들, 안내자들, 권고자들, 기적을 행하는 자들, 치유하는 자들, 이상한 언어를 하고 알아듣는 자들, 영을 식별하는 자들이다. 이런 직분은 누구나 성령의 은사에 따라서 맡을 수 있었으며, 다른 직분은 없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가 수행하는 사제직에 대해 성경에서 읽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사제들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의 수고를 인정해 주는 분이 예루살렘의 열두 사도나 다른 누가 아니라 주님이시라고 말한다.(갈라 1,1-20) 신약성경의 어느 사도도 사제로 서품된 적이 없으며, 바오로 역시 평신도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은 뒤에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또는 자신을 일꾼으로 삼은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교서에서,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설립하셨다는 최후의 만찬 때에 참석했던 이들은 남자들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성찬례를 행할 사제는 당연히 남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사도들의 아내들이 참석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열 둘’이라는 것 자체가 12지파로 이뤄진 모든 이스라엘에 대한 은유일 따름이라고 성서학자들은 말한다.

실제로 초기교회는 회당에서 집회할 때는 물론 여자들이 발언할 수 없었겠지만, 유대교와 갈등을 빚어 가정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예언도 하고 기도를 주도할 뿐 아니라 지역교회 창립의 주역이 되었다. 유니아와 브리스카 등 여성 지도자의 이름이 복음서에서 연거푸 등장한다. 부부로 사도 직분을 행하던 이도 많았다.

미사의 원초적 형태였던 빵을 나누는 공동식사에서 주례자가 사제라는 뜻이라면, 빵을 나눠주던 여성들도 사제 직분을 수행한 것이 된다. 그런데 실상 정해진 사제는 없었다. 사제직은 회중 전체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함께 했던 무리들과 초기 교회 안에서, 여성들은 칸막이 뒤에 격리되지도 수녀들처럼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세상을 등지고 살지도 않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단정하지 못하게 방랑하던 동정녀도 아니었고, 틀림없이 사도들을 비롯한 대다수 제자들처럼 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에 그들의 사내와 함께 이층 방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여성들에게 주신 ‘자유’를 교회가 도로 빼앗아 가도 되나?

교회는 가부장적인 로마질서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던 해방된 자의식과 고유한 길을 벗어났으며, 여성혐오적이고 성차별적인 그리스와 유대교의 사상을 통해 공동체 주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심어왔다. 게리 윌스는 <교황의 죄>(중심, 2005)에서 “우리가 흑인을 열등하게 보면 그들에게 불의한 행동을 자행하는 걸 정당화하게 되고, 유대인을 그리스도의 살해자라고 믿으면 유대인에 대한 학살에 기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혐오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판단과 실천을 낳는 법이다. 예수께서 여성들에게 주신 ‘자유’를 교회가 도로 빼앗아 가두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교회 질서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역사적 변형에 따른 교회법적 규정에 따른 것이기에, 교황령 상실을 ‘은총’으로 고백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에게서 성령이 어떤 모습으로 교회 개혁의 불길로 작용하실지 아직 예측할 수는 없다. 이미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전 교황들과 확연히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지금은 교황 개인의 겸손한 삶을 드러내고, 가장 가난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전통적인 여성사제 서품 금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굳센 믿음을 지닌 어떤 여인의 이마에 성유를 바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편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여성사제 허용에 앞서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사제직 그 자체가 여전히 권력을 의미하는 관행을 개혁하는 일이다. 이미 프란치스코 교종은 먼저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제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제직 자체가 온전한 의미의 ‘봉사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여성사제는 여성들의 권력 참여 확대 이상의 의미를 담기 어렵다. 정양모 신부는 “여성사제 서품보다 성직자들의 비복음적 권위주의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성직자들의 권위주의를 그대로 두고서 여성사제가 생겨난다면 ‘남녀 성직자 합작 권위주의’가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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