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성서와 공룡 중에 뭐가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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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성서와 공룡 중에 뭐가 사실이에요?
  • 유형선
  • 승인 2018.11.1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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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일요일 오후, 출장 업무를 마치고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현관문을 열자 두 딸과 아내가 반겨주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작은 딸이 아빠 얼굴을 얼싸안고 연신 뽀뽀를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큰 딸이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하는 저녁 식사를 위해 고기를 구웠습니다. 아내는 냉장고 반찬통에서 달걀간장조림을 꺼내 흰 쌀밥과 함께 제 앞에 놓았습니다.

 

사진=한상봉

1라운드: 성당 가기 싫은데...

온 가족 둘러 앉아 즐겁게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울 때쯤, 제가 7시 주일 미사에 다 함께 가자고 말했습니다. 순간, 두 딸은 동작을 멈추고 저의 눈을 피했습니다.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하는 일요일 저녁을 성당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눈빛이었습니다.

“얘들아! 일요일 저녁 미사는 늘 가족이 함께 했잖니? 아빠는 출장 내내 이 시간을 기다렸어!”

두 딸은 대답이 없습니다.

“이번 주 주보에 아빠가 쓴 글이 나오거든. 아빠 글 보고 너희들이 평가를 해줘야 하지 않겠어?”

여전히 두 딸은 대답이 없습니다. 아내가 나섰습니다.

“여보! 딸들한테 혼란스럽게 요구하지 마세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말해 주세요. 미사를 드리러 가야 하니 얼른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라고요.”

“얘들아! 미사 보러 가자.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오너라!”

엄마까지 나서자 두 딸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큰 딸은 시큰둥 무표정이었고 작은 딸은 입술이 코에 달라붙었습니다.

2라운드: 성서는 깨달음을 주는 소설 같은 거예요!

다행히 미사에 늦지 않았습니다. 제가 앞장서서 성당 제일 앞좌석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두 번째 좌석에 앉았습니다. 저도 얼른 두 번째 좌석에 따라 앉았습니다. 

미사 시간에 작은 딸이 저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작은 딸: “아빠! 성서와 공룡 중에 뭐가 사실이에요?”
아빠: “공룡은 사실이고 성서는 진실이지!”
작은 딸: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 거예요?”
아빠: “예를 들어 소설이나 동화는 사실이 아니지만 진실을 알려주지!”
작은 딸: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아빠! 성서는 깨달음을 주는 소설 같은 거예요!”
아빠: “우리 딸, 완전 똑똑하네!”

제가 활짝 웃으며 딸 손을 잡았습니다. 딸은 무언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입술에 손을 대며 이제는 미사에 집중하자고 했습니다. 작은 딸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3라운드: 아빠는 왜 미사를 드려요?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오면서 작은 딸과 대화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작은 딸: “언니랑 저는 ‘언더테일’ PC 게임을 아주 좋아하잖아요. ‘언더테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더테일’ 게임을 종교로 만들 수도 있는 거지요?”
아빠: “그렇겠지?”
작은 딸: “그러니까 깨달음을 주는 성서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성서를 종교로 만든 거예요.”
아빠: “말 된다!”
작은 딸: “아빠! 옛날에 ‘ET’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아빠: “오! 수린이 ET를 봤어?”
작은 딸: “아니요. 안 봤어요. 그런데 ET를 좋아했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ET를 믿는 종교를 만들었대요.”
아빠: “오! 그래?”
작은 딸: “아빠! 세상에는 여러 신들이 있잖아요. 아빠는 그 신들이 모두 진짜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 “글쎄…… 아빠는 여러 신들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작은 딸: “아빠! 아빠는 왜 미사를 드려요?”
아빠: “사람들은 가끔 괴물로 변할 때가 있어. 아빠도 마찬가지야. 아빠는 괴물로 변하지 않으려고 미사를 드려. 매주 미사를 드리면서 아빠 가슴 속에서 양심을 꺼내 보거든. 괴물로 변하지 말고 사람으로 살아야지 다짐하지. 이게 아빠가 미사를 드리는 이유야.”
작은 딸: (눈을 크게 뜨면서) “사람이 괴물로 변한다고요?”
큰 딸: “사람이 가끔 괴물로 변한다는 데 저도 동의해요. 그런데 수린이 말은 매주 일요일마다 반드시 미사를 드릴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아빠: “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구나!”
엄마: “아이들이 미사를 드릴지 말지 스스로 선택하면 좋겠어요. 수민이는 이제 중학생이고 어른과 다름없이 사고하고 있어요. 수린이도 사춘기가 시작됐고요.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자기 결정을 존중받길 바라고 있다고요.”
아빠: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럼 수민이는 다음 주일에 미사 드리러 함께 성당 갈거니?”
큰 딸: “음…… 저는 아빠와 엄마와 함께 하는 게 좋아서 미사 드리러 가는 거예요.”
작은 딸: “음…… 저는 지금은 모르겠어요.”
엄마: “아이들은 집에 두고 당신이랑 나만 미사 드리고 예쁜 카페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며 데이트 합시다! 하하하!”

어색했던 대화는 아내의 웃음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온 가족이 비엔나 커피가 맛있는 추억의 카페로 갔습니다. 커피와 쿠키와 빵을 먹으며 아빠가 열흘이나 집을 비운 사이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진=한상봉

4라운드: 아이들 억지로 미사 보게 할 필요가 있을까?

두 딸을 모두 재운 깊은 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엄마: “미사 보기 싫다는 아이들 억지로 미사 보게 할 필요가 있을까?”
아빠: “부모로서 종교교육은 시켜야 하는 거 아니겠어? 때 되면 밥 먹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가르치는 건 당연하잖아. 마찬가지로 때 되면 성당 가서 자신의 영혼을 되돌아보는 법도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
엄마: “자기 영혼 돌아보는 걸 꼭 성당 가서 해야 하는 건가?”
아빠: “나 어릴 적에 엄마 따라 성당 다닐 때 왜 가는 줄도 몰랐어. 그러다 어른이 되고나서 한동안 성당에 안 갔더니 어느 순간 영혼 돌보는 법을 잊어버렸더라고. '가톨릭일꾼' 만든 도로시 데이도 태중에 아이를 가지고서 생명력의 신비를 느끼며 어릴 적에 다녔던 성당을 다시 찾았다고 하잖아. 나는 딸들이 매주 미사에 참석했던 기억을 갖길 바라. 지치고 힘들 때, 가까운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며 영혼의 힘을 되찾는 방법을 몸에 익혔으면 한다고. 성당과 함께 한 기억이 몸에 습관처럼 배면 두 딸에게 평생 버팀목이 돼 줄 거야.”
엄마: “음. 내 생각은 다른데……, 엄마나 아빠가 강요해서 주일 미사를 본 것이 좋은 추억이 될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무엇이든 스스로 좋아서 선택해야 한다고. 난 주일 미사를 드리는 것과 상관없이, 늘 기도하면서 내 영혼을 돌아봐요. 아마 우리 집에서 내가 기도 제일 많이 할 걸?”
아빠: “나는 글 쓸 때 기도 해. 글 쓰는 게 나에게는 기도야.”

고민이 깊어갑니다. 아이들 종교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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