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렸으니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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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렸으니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 한상봉
  • 승인 2018.11.0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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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자들의 책>, 타리크 알리 서문, 앤드루 샤오-오드리아 림 엮음, 샘앤파커스, 2012

고애신, 유진초이, 쿠도히나, 구동매, 김희성. 모두가 슬픈 사랑의 사람이었다. ‘의병’을 다룬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최종회를 보면서, 깊이 공감한 인물 가운데 하나는 김희성이었다. 고문하던 일본 경찰이 황은산과 고애신의 이름을 들먹이자, 김희성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들”이라고 읊조린다. 그리곤 “나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런 이유로 그 이들과 한 패로 묶인다면 영광”이라 한다. 순간 윤동주도 떠오르고, 한 짝인 듯 문익환 목사도 떠오른다. 그 아름다운 이름들과 나란히 설 수 있다면 참 괜찮은 인생이지 싶다. 

‘4000년 인류 역사에 울려 퍼진 분노와 저항의 앤솔로지’라는 부제가 달린 <저항자들의 책>은 세계의 진보담론을 이끌어온 <뉴레프트리뷰>가 출판사 <버소>를 통해 출간한 책인데, 번역판에선 홍세화, 이현우, 박노자가 추천의 글을 썼다. 홍세화는 “인류는 인간성을 확장하고 조금이라도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합리한 시대의 조건과 한계에 맞서 싸운 사람들에게 빚져왔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언제나 소수에 속했던 그들은 주류와 권력 앞에 선 나약한 존재이자 지극히 평범한 개개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굴종할 것인가’ 또는 ‘저항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묻는다. 

 

노무현

이참에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던 노무현의 연설이 새삼스럽다. 이 연설도 <저항자들의 책>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로쟈’로 잘 알려진 이현우의 글에서 인민(人民)의 의미도 처음 알았다. 한편에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의료인이 있고, 다른 한편에 농민, 어민, 빈민, 서민, 노동자가 있다. 지배층 인(人)과 피지배층 민(民)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고대중국에서 민(民)이란 한쪽 눈이 찔려서 상해를 입은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민(民)은 인문(人文)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저항자들의 책>은 인문(人文)이 아니라 민문(民文)의 역사를 우리한테 보여준다고 이현우는 말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혁명

타리크 알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인류가 존재한 이래, 온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고 했다. 이들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신분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소수의 지주들이 땅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구습에 저항하거나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존재만큼 평등함을 외치는 사람들이다. 때로 그 외침은 생명을 담보로 하고, 젊은 나이에 수감되고 일신의 안락을 포기해야 하는 힘겹고 거친 삶이었다. 그들은 노예였으며, 농민이었으며, 무산계급이었으며, 여자였으며, 유색인이었으며, 피지배계급이었다. 때로 그들은 군대를 조직하고, 혁명을 일으키고, 비폭력항쟁에 나섰다. 지배자들의 군대는 국가, 도시, 부, 권력, 전리품, 통제권, 식민지 획득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군대였다. 인간의 모습을 한 혁명군이었다. <저항자들의 책>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느냐?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왜 우리만 상전의 매질을 당해가며 뼈가 빠지게 일만 해야 하는가!” 말했던 고려시대 노비 만적과 동학농민군, 광주시민군과 박노해의 시가 포함된 것은 흥미롭다. 

Dom Hélder Pessoa Câmara

<저항자들의 책>에 등장하는 이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적은 까닭은 그만큼 교회가 역사의 질곡이었던 시절이 길었기 때문이겠다. 지금이라면 본회퍼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포함되었을 테지만, 이 책에는 바실리오 성인과 마르틴 루터와 토머스 뮌처, 헬더 카마라 대주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정도가 언급되었을 뿐이다.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당신의 것입니까? 당신은 어디서 당신의 행복을 길어왔습니까? 당신은 마치 극장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들을 마치 자신만의 것인 양 다루는 사람 같습니다. 부자들이 바로 그렇답니다. 그들은 공공의 재화를 선점했기 때문에 그 재화를 마치 자신만의 것인 양 취합니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남은 것들을 부족한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면 아무도 부자가 되거나 가난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부자는 도둑입니다.”(카이사리아의 바실리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부른다.”(돔 헬더 카마라)

여기에는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싸운 쿠바 타이노 부족의 전설적인 추장 아투에이(Hatuey)을 발언도 옮겨 놓았다. 그는 스페인 군대에 생포되어 산 채로 불태워졌다. 그는 타이노 부족을 향한 연설에서 황금과 보석이 담긴 바구니를 사람들 앞에 보여주면서, 스페인 사람들이 경배하는 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여기 스페인 사람들이 경배하는 신이 있다. 그 신을 위해 그들은 전쟁을 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그 신을 위해 그들은 우리를 착취한다. 우리가 그들을 바다에 처넣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폭군들은 자신들이 평화의 신, 평등의 신을 경배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를 노예로 삼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불멸의 영혼과 영원한 보상, 영원한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강탈하고 우리의 아내들을 빼앗아갔으며, 우리의 딸들을 겁탈했다. 우리의 용기에 맞설 배짱이 없는 이 겁쟁이들은 우리의 무기가 꿰뚫을 수 없는 강철 갑옷 속에 몸을 숨겼다.”

저항자의 영혼은 아름답다

그리스도인 저항자들의 영혼을 잘 드러낸 꼭지도 있다. 1656년 불경죄로 체포된 영국의 급진적 퀘이커 교도였던 제임스 네일러(James Naylor). 그는 채찍질을 당하고 낙인 찍혔으며, 칼을 쓴 채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혀를 뚫리는 고문을 당한 뒤 중노동에 처해졌다. 그는 최후변론에서 고통 가운데 이런 글을 남겼다.

“내 영혼은 기꺼이 어떠한 악도 행하지 않고 불의에 대한 어떠한 보복도 하지 않으며, 다만 종국에는 스스로의 행복을 누리리라는 희망 속에 기꺼이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내 영혼의 희망은 모든 분노와 다툼을 헤치고 모든 광휘와 잔인함, 또는 자연을 거스르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 자체에는 어떤 사악함도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생각 속에는 다른 어떤 음모도 끼어 있지 않습니다. 배신당한다 해도 참아낼 뿐입니다. 내 영혼의 땅과 샘물은 신의 자비와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의 왕관은 온순합니다. 내 영혼의 삶은 진실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다툼이 아닌 타협으로 나라를 이루고, 가장 낮은 마음으로 그 나라를 지킵니다. 버림받은 나는 홀로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 땅 위의 구석지고 외딴 곳에 사는 이들과 마음을 나눕니다. 그들은 죽음 통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James Naylor

이 마당에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의 편지가 빠질 수 없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라고 말했던 체 게바라는 유엔총회 연설과 알제리, 아프리카 방문으로 3개월간 여행하던 중에 편지를 남겼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며 말하지만, 진정한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의 느낌에 의해 인도된다네. 사랑의 감정이 없는 진정한 혁명가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아.

... 혁명의 지도자들에게는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해 아직 아빠의 이름도 부를 줄 모르는 아기가 있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통째로 포기하느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내도 있고, 친구들조차도 소수의 혁명 동지들로 국한되어 있네. 혁명 이외의 다른 삶은 없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교조주의와 차가운 금욕주의 학문, 대중으로부터의 소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대한 인간애와 강한 정의감, 그리고 진실을 품고 살아야 할 것이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사랑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를테면 추동력이 되어 행동으로 전환되도록 매일같이 분투하고 있다네.”

그들의 급진적 견해와 유머감각

저항자들 가운데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 뛰어난 유머 감각을 소유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재미있고 놀랄만한 방식으로 말할 줄 알았다. 그네들의 영혼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영국의 급진적 토지공유제 지지자였던 토머스 스펜스(Tomas Spence)는 불온 선전물 유포죄로 두 번 투옥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내가 숲에서 호도를 따고 있을 때 삼림감시원이 덤불에서 나와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호도를 따고 있다고 대답했다. 
“호도를 따고 있다고?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는 것이냐?”
“어째서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인가? 원숭이도 다람쥐도 호도를 따고 있지 않은가.”
“잘 들으시오. 이 숲은 공동의 것이 아니고 포틀랜드 공의 소유란 말이야.”
“오, 그래? 공에게 가서 내가 안부를 묻더라고 전해주게. 그리고 공에게 이 숲은 나에게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게. 또 숲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먼저 따는 자가 임자이니, 만약 포틀랜드 공에게 호도가 필요하면 가만히 있지 말고 얼른 숲으로 오라고 하게.”

 

Roquia Sakhawat hussain

방글라데시 출신의 무슬림 작가이자 페미니스 활동가인 로키야(Roquia Sakhawat hussain)의 이야기도 대단하다. 그는 1911년 콜카타에 최초의 무슬림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마드라스의 영어판 잡지에 처음으로 실린 이 글은 유쾌한 감동을 여성들에게 안겨준다. 

“사회적인 문제를 처리하는데 우리는 도움도 줄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어요. 인도에서 남자는 군주이며 주인입니다. 남자가 모든 힘과 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여자는 규방에 갇혀 살아요.”
“왜 당신들은 자신들이 갇혀 사는 것을 용인하나요?”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니, 저항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죠.”
“사자는 사람보다 힘이 세지만, 사자는 사람을 길들이지 못합니다. 당신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의무에 태만했으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천부의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라 수녀님,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한다면 남자는 무엇을 할까요?” 
“남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말을 용서하세요. 남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남자들을 잡아다가 규방에 처넣으세요.”

저항자들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저항자들의 요구를 가장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말은 ‘빵과 장미’였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 섬유공장에서 일어난 여성 이민노동자의 파업은 3개월간 지속되었으며, 결국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는데, 그들이 내건 요구의 첫소절부터 절창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착취당하기만 하는 삶이어서는 안 되네.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렸으니,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때 위대한 날들이 오리니
여성의 떨쳐 섬은 인류가 떨쳐 서는 것.
더 이상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은 없네.
그러니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 빵과 장미를!”

Bread And Roses
by Judy Collins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
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가슴에 품은 세상

부에나벤투라 두루티(Buenaventura Durruti)는 스페인의 아나키스트였다. 14살부터 레온 지역의 철도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자신이 만든 무정부주의 조직 ‘로스 솔리다리오스’(Los Solidarios, 연대한 자들) 활동으로 수배되어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1930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파시스트 프랑코에 저항하는 무장 레지스탕스 조직을 도왔다. 그는 아래 인터뷰를 하고서 3개월 뒤에 살해당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빈민굴이나 벽에 난 구멍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스스로 잠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건물을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 스페인과 아메리카, 그 밖에 어떤 곳에서도 이런 궁전과 도시를 지은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 노동자들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터를 가질 수 있도록 건물을 짓는다. 그보다 더 나은 것도 지을 수 있다. 우리는 폐허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계를 물려받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문도 없다. 부르주아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전에 자기들의 세상도 날려버리고 폐허로 만들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가슴속에 새로운 세상을 지니고 있다. 그 세상은 바로 이 순간에도 자라고 있다.”

 

Subcomandante Marcos.

멕시코 반군 사파티스타의 대변인 겸 부사령관 마르코스(Marcos)는 ‘현대의 체 게바라’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는 ‘꿈속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보았다.’고 말한다.

“꿈속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는 확실히 더 공정한 세계를 보았다. 이 세계에는 군대가 필요 없다는 것을 보았다. 평화, 정의, 자유 같은 말은 빵이나 새, 공기, 물, 책이나 목소리 같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누구도 동떨어진 개념인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만물을 그렇게 이름 짓는다. 이 세계에서는 정부가 이성과 선의를 가지고 있고, 그 지도자들은 생각이 반듯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복종함으로써 통치했다. 이 세상은 과거로부터의 꿈이 아니었다.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우리에게로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앞에서부터, 우리가 밟아야 할 다음 발걸음으로부터 왔다. 

그렇게 우리는 이 꿈을 성취하기 위해, 그 꿈을 끌어다가 우리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우리 집을 비추게 하고, 우리 밭에서 자라게 하고, 우리 아이들의 가슴을 충만하게 하고, 우리 땀을 닦게 하고, 우리 역사를 치유토록 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게 전부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길을 따라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향해 묻는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우리가 있던 산으로 돌아가 우리 시대에 우리 말로 말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돌봐준 형제자매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그대들의 발자국이 우리의 길을 뒤따르기를.” 
 
저항자여, 혼자서 가라

저항자들은 항상 높고 당연히 외로웠을 것이다. 뜻을 알아주는 동지가 없더라도 가야할 길을 열어가 ‘스스로 길이 된’ 사람들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 벵갈의 작가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2,000편 이상의 시를 썼다. 인도의 독립운동을 바라던 타고르의 시 가운데 마하트마 간디가 가장 좋아했던 시가 ‘혼자서 가라’였다.

"혼자서 걸어가라
당신이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거든, 
혼자서 걸어가라.

Rabindranath Tagore

그들이 면벽한 채 움츠리고 떨고 있다면
오, 불행한 이여,
마음을 열고 혼자 외쳐보라.

황야를 건널 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떠난다면,
오, 불행한 이여,
가시밭길을 내딛고,
붉은 피를 흩뿌리며 혼자서 걸어가라.

폭풍이 몰아치는 밤 
그들이 빛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오, 불행한 이여,
고통의 번갯불로, 당신 가슴에 불을 붙여라. 
그리고 홀로 타게 내버려두라."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8 10-11월호(통권 1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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