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손으로 복음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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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의 손으로 복음을 선포하라
  • 피터 쉬넬러 신부
  • 승인 2018.09.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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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깨어있는 교회-1

[요약문] 

1. 현대화 과정에서 복음적 가치들의 토착화는 매우 도전적이며 깊은 의미를 지닌다. 개신교, 타종교, 전통문화, 무신론 등과 가톨릭 간의 대화보다도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2. “다의성(多義性)”이란 현대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개념이다. 현대화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살펴봄으로써 진정한 대화와 토착화를 이룰 수 있으며 지나치게 편파적이며 일방적인 예언자들의 강변을 막게 된다.

3. 현대세계의 제반양상은 현대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빈부격차, 세계적인 기아, 기술사회, 핵무기, 다국적 기업, 생태계와 성장의 한계, 현대화된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변화 등 현대화로 생겨난 문제들은 비판적인 차원에서 신앙과 신학상의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4. 하느님은 중립적인 분이 아니고, 약한자와 가난한 자의 편을 드신다. 따라서 현대화에 대한 신앙적 응답–곧, 하느님의 말씀과 관점–과 평가의 기준은 현대화가 장·단기적으로 약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

5. 국제기구의 하나인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현대화를 평가하면서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한 자의 관심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6. 현대사회의 구체적인 죄악에는 (1)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관점을 초월하지 못했다는 점, (2)복합적 사회현상을 묵인하고 공모한 점, (3)소비주의 등이 포함된다.

7. 현대화에 대하여 복음적 가치들의 토착화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장점에는 (1)검소한 생활양식, (2)세계의 문제에 대한 인식과 책임 형성, (3)책임있는 행동을 하기 위한 총체적 이해, 즉 지혜 등이 포함된다.

8. 현대 사회에서 복음의 토착화의 과제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는 교회의 구조, 형식, 운영방식, 언어를 자체적으로 현대화 해야 한다.

9. 현대 사회에서 복음의 토착화는 평신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1) 현대와의 대화

현대화 과정에서 복음적 가치들의 토착화는 매우 도전적이며 깊은 의미를 지닌다. 개신교, 타종교, 전통문화, 무신론 등과 가톨릭 간의 대화보다도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흔히 토착화라하면 오지의 마을에서 선교사가 그리스도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활동하는 장면을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회의 아루페 총장이 말했듯이 토착화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어야 하며 선교활동을 하는 모든 신자는 어디에 있든 “토착화의 한 요원”으로 부름받고 있다. 필자는 현 세계상황에서 현대화와의 대화가 교회 사명에 있어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적·양적변화: 현대화는 정치적, 경제적, 생태학적, 문화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사회의 중대한 질적·양적 변화, 즉 새롭게 떠오르는 세계를 지칭한다.

정확히 말해, 현대화는 다양한 학문(예를 들면,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 과학사 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할 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어쨌든, 현대화는 동과 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다양성을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아무리 외양적으로는 서구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하더라도 서구화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리고 남반구보다는 북반구, 즉 소위 제1세계 국가에서 최고로 발전된 현대화가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 현상은 모든 국가의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사람들은 현대화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누구나 다 원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현대화를 체계적, 전 세계적, 진보적인 현상이며.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보다 중요한 대화: 마지막으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 –그리고 이 점은 이 (1)번 항목에서 가장 중요한데–그리스도교와 현대화와의 대화는 다른 종교와의, 전통 문화와의, 그리고 무신론과의 대화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대화는 단순히 여러 문화 중의 하나가 아니라, 다른 모든 문화를 제압하려는 시도를 한다. 전통 종교 및 정치의 가치체계는 현대화가 시작되면 흔들린다. 종교(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를 모두 포함한)와는 달리 현대화는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상부구조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물리적, 정신적 영향을 가해오는 어떤 힘이다. 현대화는 세속화보다는 포괄적 개념이며, 그리스도교 및 비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도전이다. 세속화는 현대화의 한 부분집합인 것이다.

전통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를 토착화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문화가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손상될 위험성이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확연히 구분되어왔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조차도 현대화에 의해 상대적으로 그 대조가 약화되었다. 미국, 소련, 중국 등 세계주요열강국들은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현대화라는 공동목표 하에 각 국의 다국적 기업, 국제무역, 통신 등을 통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대화 역시 믿는자, 안믿는자 할 것 없이 모두 이 세계를 잘 보존하여 자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한다는 공동목표 아래 그 중대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그리스도교인 혹은 유신론자의 적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현대화의 악영향이며, 파괴적이고 사악한 잠재세력들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8)교회구조의 현대화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토착화의 과제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는 교회의 구조, 형식, 운영방식, 언어를 자체적으로 현대화해야 한다.

현대화의 긍정적 측면과의 대화: 현재까지는 교회가 현대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대사회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으나, 이제는 교회 스스로의 현대화를 모색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교회가 게토화 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려면, 현대화와 대화를 할 뿐만 아니라 그 긍정적인 측면을 도입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존중되는 세계 현실 속에서 교회는 권위주의적이거나 군주제적으로 남아있을 수가 없다. 참여가 보장되어야하며 지도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리여야 한다. 다원화된 종교 문화 속에서 그리고 개인 자유가 존중되는 문화환경 속에서 교회의 권위는 도덕적 권위이어야 하며 단순히 외형적이며 상징적이어서는 안된다.

상대성과 역사의식으로 특징지어지는 문화 속에서 교회는 교회제도의 역사성을 인식하며 그 제도를 현대세계에 맞게 바꾸어나가야 한다. 경험주의적 인식이 팽배해있는 이 사회에서 교회는 교회의 교리, 신앙, 설교를 행동화해야 한다. 누구나 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는 문화환경 속에서 교회는 좀 더 나은 사회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의와 평등이 높이 존중되는 문화환경 속에서 교회는 교회 지도자와 사제를 임명할 때에 자질들을 신중히 고려해야한다.

도시화: 인류의 역사는 3대혁명–즉 농업혁명, 과학·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혁명–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정보화시대에 발맞추어 교회의 메시지를 변화시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복음을 인간 삶에 전달시키는데 있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을 농업을 통해 농촌에서 살아가는 존재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도시화과정에 있는 상황도 고려해야만 한다.

현대화되고 기술화된 인간성의 꿈, 희망, 공포는 삶에 대한 복음의 메시지와 대면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제 이 도시화된 사회에서 자연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에 비해 그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도시의 현실에서 유출해낸 상(像): 도시의 구체적 모습–고층빌딩과 교통체제, 그리고 전자통신망–은 오늘날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나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과거 촌락에서는 교회의 건물자체가 시각적으로 문화의 구심점이었으나 이제 도시의 교회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다. 종교의 기능이 변한 것이다.

사람들은 조언을 듣기위해 사제 보다는 정부관리, 경영인,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등에게로 간다. 이 복합 사회에서 사제는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닌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종교는 보다 덜 직접적이며 보다 더 중재자적인 역할을 한다. 교회의 메시지와 복음은 정부, 학교, 기업과 같은 다른 기관을 통해 전달된다. 그리고 이 전달 작업도 평신도를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진다. 사실 평신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유대교 사회에서 예수도 평신도였다.

(9) 평신도가 복음을 토착화시킨다

현대사회에서는 평신도를 통해서만 복음이 토착화 될 수 있다.

세속적 힘의 증대: 현대 사회와 현대 이전의 사회를 비교해보면 교회는 현대이전의 사회에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사제와 주교는 인간의 삶과 운영에 훨씬 더 큰 권한과 힘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화 과정은 –특히 세속화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정확히 말해 교회영향력의 상실과정이며 다른 세속적 힘의 증대과정이다. 세계는 교회보다는 은행, 정부, 기업에 의해 더욱 더 변해가는 것이다.

토착화의 기본원리: 다시 말해 교회가 중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 현재에는 비사제, 즉 평신도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사회 속에 토착화시키는 이 과정에서 이제 평신도에게 책임의 비중이 옮겨져야 한다. 평신도들은 이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세속적이면서도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올바르게 참여하도록 복음의 가치를 넣어주어야 한다. 토착화 과정은 능력과 상황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며, 밖에서 들어온 말이 아니라 그 상황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또한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던 문화에 대해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과정에 포함된다.

복음은 다국적 기업에 대해 언급한다: 위와 같은 변화에 따르자면 사제와 종교적 지도자들의 역할도 평신도에게 힘을 부여해주어 현대사회에서 그들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촉매제로 변화한다.

다국적기업을 예로 들어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사제, 주교, 신학자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직접적 경험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

다국적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다른 대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국적 기업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됐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복음이 다국적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이 작업은 누군가 다국적기업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경험이 있는 사람, 즉 평신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토착화 작업을 이행하는데 있어 평신도가 주요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이 무시된다면, 교회는 점점 더 세상과 동떨어진 채 몰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교회가 아무도 듣는 이가 없으며 현대문화와는 무관한 말만을 하는 동안 복음과 삶, 교회와 세상간의 격차는 점점 넓혀지기만 할 것이다.

교회에 대한 새로운 전망: 이제 전반적 주제인 토착화와, 누가 신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다시 돌아가자. 이 현대화된 세상에서, 복음적 가치의 토착화 신학 작업은 신학자들만이 전담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중요한 것이다. 이 작업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좀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맡아서 해야한다.

“은총은 모든 현실 속에 깊숙이 숨어있다”고 한 칼 라너의 말이나 “은총은 풍부하게 주어진다”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을 생각해볼 때, 신학 작업은 이제 평신도의 손에서 이루어져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하느님의 진리와 부르심을 찾아내도록 해야한다는 사실이 더욱 더 명확해진다.

이렇게 평신도의 역할을 중대시키는 것이 물론 기적적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우리가 직면한 과제에 대한 실마리는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과제란 새로운 교회상으로의 회개, 즉 현대 세계 속의 토착화 과정에서 평신도가 그들의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사제의 새로운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출처] <현대사회에서 깨어있는 교회>, 참사람되어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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