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 "하느님 모시고 바닥으로 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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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하느님 모시고 바닥으로 기어라"
  • 유형선
  • 승인 2018.09.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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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역사 속 인물을 만나는 방법은 사실 독서가 유일합니다. 지금껏 읽은 책 속 인물을 실제로 만나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왠지 어색할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으로 알던 사람 만나는 느낌이랄까요?

책을 읽었지만 직접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입니다. 이미 소천하신 분이니 분명 헛된 생각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책을 내리 두 권 읽었습니다. 녹색평론사에서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를 모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장일순 저, 녹색평론사)와 장일순 선생의 서화와 일화를 엮은 <좁쌀 한 알>(최성현, 도솔) 입니다. 장일순 선생의 책을 읽다 보면 선생의 너른 인품이 느껴집니다. 직접 마주보고 앉아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장일순 선생께서 빙그레 웃으며 다 들어 주실 것 같습니다.

 

스승이요 동지

알면 알수록 놀라운 분이었습니다. 대체 이 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김지하 시인, 이현주 목사,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스승으로 모십니다. 언론인 리영희 선생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이슬>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깁니다.

무엇보다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와 평생 뜻을 같이 한 동지(同志)였습니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80년대에 전라도 광주가 있었다면 70년대는 강원도 원주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던 1965년 원주교구가 춘천교구로부터 분리되어 창설되고 지학순 주교가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이 됐습니다.

지학순 주교와 민주화 운동

1970년 원주문화방송이 설립될 때 지학순 주교는 지분 40%를 가지며 지역사회 복음 전파와 언론 발전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60%의 지분을 가진 5ㆍ16장학회가 부패하면서 방송국 운영과 재정이 형편없이 망가집니다. 방송장비를 구매한다는 명목으로 천주교 원주교구에 바가지를 씌웠고 공금을 횡령하며 탈세도 서슴지 않습니다. 원주교구가 감사를 요구하자, 5ㆍ16장학회은 자기네 지분을 다른 종교에 넘기겠다며 되레 지학순 주교를 협박합니다.

지학순 주교는 5ㆍ16장학회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박정희에게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별 반응이 없자, 이에 분개하여 원주에서 1971년 부정부패 고발과 사회정의 실현을 선언했습니다. 원주문화방송의 운영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와 가두시위를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처음으로 사회 운동에 개입하는 순간이며 7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지학순 주교의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972년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이사장이 되고,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도 맡아 활동하며 유신 정부에 저항합니다. 1974년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주교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지학순 주교는 김포공항에서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됩니다. 지학순 주교가 김지하에게 돈을 준 적이 있습니다. 

김지하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붙잡혀 사형을 언도받았고 결과적으로 지학순 주교는 민청학련 배후자로 몰립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지학순 주교는 ‘민주화 운동하라고 김지하에게 돈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나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돈’이라고 주장합니다. 지학순 주교가 연행되자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와 면담했고 윤공희 주교는 시국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지학순 주교의 석방을 요구하며 사제들이 결성한 단체가 바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노력 끝에 1975년 김지하와 지학순 주교가 석방됩니다.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이처럼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지학순 주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장일순 선생입니다. 1965년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는 함께 일할 사람을 찾다가 장일순 선생을 만납니다. 장일순 선생 역시 지학순 주교를 만나 평소에 품고 있던 꿈을 펼칠 실마리를 찾습니다. 언론인 리영희 선생은 지학순과 장일순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장일순 선생이) 언제나 뒤에서 지학순 주교님에게 올바른 방향을 일러드리고는 했지요. 사실 지학순 주교님은 본래 사회 의식이 분명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인자하시고 순진하셨으며, 열정적인 분이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과의 은근하고 태연한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셨지요."(<좁쌀 한 알> 34-35쪽)

지학순 주교가 1968년 설립한 원주 가톨릭 센터에서 장일순 선생은 ‘협동조합강좌’를 열고 농촌, 어촌, 광산촌을 살리기 위한 협동조합운동을 펼칩니다. 이 후 십년간 여러 협동조합 운동에 매진합니다. 1977년, 지난 십 년간 집중한 협동조합 운동을 반성하면서 종래의 방향으로는 안되겠다고 깨닫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합니다.

한살림운동

1983년 10월 29일, 장일순 선생은 농산물 도농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생명운동을 전개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농산물 직거래 조직이었지만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하늘과 땅을 되살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상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살림> 협동조합은 홈페이지에 협동조합의 사상적 배경을 정리한 ‘한살림 선언’ 전문을 PDF로 올려놓았습니다. 이 선언문은 한살림운동의 이념과 실천방향을 확립하기 위해 가진 공부모임과 토론회에서 합의된 내용을 장일순 선생님, 박재일, 최혜성, 김지하가 정리하고 최혜성이 대표집필하여 1989년 10월 29일 한살림모임 창립총회에서 채택됐습니다.

선언문이란 마르크스ㆍ엥겔스의 ‘공산당 선언’같은 성격의 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살림 선언’ 내용은 공산주의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현실은 마르크스주의의 궁극 목표인 인간해방이 아니라 인간의 재노예화인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는 권력을 당과 국가의 관료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관료의 무책임, 부패, 나태만을 조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민들의 노동의욕을 약화시킴으로써 경제를 무기력하게 만들 었고 자연자원을 무분별하게 개발함으로써 자연을 황폐화하였다."(‘한살림 선언’ 중에서)

그렇다고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옹호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일찍이 자연의 정복에 활용하였던 과학과 기술을 가지고 인간심리를 조작∙지배하여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써 사회의 원심력을 정복하였다. 그리하여 산업기술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제와 지배의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업사회 초기에 그렇게 소중한 가치였던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생산과 능률을 앞세우는 기술의 이데올로기 앞에 굴복하게 되었고 인간은 기계, 기술, 체제에 예속되어 종속적 위치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선진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적인 성장과 풍요를 성취하였으나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한살림 선언’ 중에서)

한살림 선언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인류가 처한 위기를 드러내고 해법을 위한 철학을 제시합니다. 1장에서 현대사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기술적 산업주의에서 찾습니다. 2장에서 산업문명의 사상적 토대인 기계론적 모형 이데올로기를 분석합니다. 3장에서는 생명과 기계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합니다. 현대 문명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기계론적 모형 이데올로기 보다 인류가 집중하고 조명해야 할 대안적 근원으로 우주의 생명 원리인 창조적 진화에 주목합니다. 4장에서는 ‘인간 안에 모셔진 우주생명’ 이라는 생명 사상을 설명합니다. 마지막 장에서 생명 사상을 실제로 구현하는 ‘한살림’ 협동조합 운동의 전망을 밝힙니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짐승의 먹이로 오신 하느님

 

<한살림 선언>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역설합니다. 자연 약탈과 파괴, 핵과 공해에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모두 눈 감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결국 파멸입니다. 이제는 ‘생명’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곧 우주이며 사람도 벌레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두 똑같이 존엄합니다. 모두가 존엄한 하느님입니다.

생명은 곧 하느님이라는 한살림 정신은 장일순 선생의 지론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열 두 살 때 천주교 영세를 받고 원주교구 평신도 회장을 맡기도 하신 천주교 교인입니다. 장일순 선생이 직접 쓴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예수 탄생>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왜 하필이면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 오셨단 말인가, 인간들의 집에서 태어나지 않으시고! 바로 이점에서 인간만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존재를 하나같이 자기 몸으로 섬기시는 징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체를 섬기고자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유에 오신 것은 짐승의 먹이로 오신 것입니다. 인간 세상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 공간과 무한한 시간에 걸쳐서 보이는 것, 안 보이는 것, 몽땅 해결하러 오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것들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나락 한 알 속의 우주> 16쪽)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한한 감동을 줍니다. 하늘을 나는 새, 들에 핀 백합화도 먹이고 입힌다는 말씀인데 하느님은 날짐승 하나, 풀 한 포기도 빠뜨림 없이 섬기신다는 뜻이요, 먹이와 입는 것이 되어주신다는 뜻이요, 풀 한 포기 새 하나에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오늘의 수고는 오늘로서 그치고 내일 걱정을 말라는 것은, 상대적인 시간에 매여서 살지 말고 절대적인 시간인 영원하신 하느님의 생명에 동참하라는 엄숙한 명령이십니다."(<나락 한 알 속의 우주> 18쪽)

유불선, 동학과 서학이 두물머리처럼 만나는 장일순 

장일순 선생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 운동가이며 천주교인 맞습니다. 동시에 불교와 도교, 동학과 성경에 이르기까지 문명과 철학의 흐름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생명사상을 종합하고 실천하신 한국 현대 철학사의 거인이셨습니다. 불경을 이야기하다 노자와 장자를 이야기하고, 성경을 이야기하다 동학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내시는 분이셨습니다. 

특히 천지 만물을 한 생명으로 보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 사상을 키워내어 원주의 민중운동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지금도 원주군 호저면 솔골에 가면 해월 최시형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장일순 선생이 직접 비문을 쓴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해월 선생이 관군에게 붙잡힌 터에 세운 기념비입니다.

유불선의 경지를 넘나들며 동학과 서학이 두물머리처럼 만나는 장일순 선생의 세계를 책을 통해 접해 보길 권합니다. 빙그레 웃으며 참으로 쉽고도 명쾌하게 설명하는 장일순 선생의 인품과 기운에 분명 반하실 겁니다.

 

비우고 흐르고 내리고 숙이는 혁명

장일순 선생은 평생 사군자를 그리고 글씨를 쓰신 서예가 이셨습니다. 창간 <한겨레신문>의 제목 글씨를 쓴 분이 바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입니다. 수 많은 서화와 글씨를 쓰셨는데, 특히 말년에 자주 그리셨던, 사람의 웃는 얼굴 모양새를 띈 난초가 유명합니다. 장일순 선생의 서화를 모은 책 <좁쌀 한 알>을 펴낸 최성현 작가는 선생의 난초 그림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선생님의 저술, 선생님의 역사의식, 선생님의 사상은 난초에 다 들어 있다. (중략)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이 꽃으로, 그것도 반드시 꼭 단 한 송이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예술로서, 문인화로서의 까다로운 격식은 이미 아랑곳없었다.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에 대한 연민과 세세생생 태어나고 또 태어나 유전하는 중생에 대한 슬픔, 그리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매우 고전적인 큰 외로움이 난에 가득 넘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이미 문인화도 아니고 그대로 좁쌀 한 알 주의였다. ... 이때는 또 선생님이 해월에 심취하시던 시절이기도 하고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강연하거나 노자 이야기를 많이 하시던 때다.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밑으로 기어라!’"(<좁쌀 한 알>9-10쪽)

멋진 말과 글을 남긴 사람은 시대마다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장일순 선생은 다릅니다. 강원도 치악산 골짜기 아래서 시작됐지만 민중운동과 협동조합운동으로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며 두루 공경 받는 장일순 선생의 사상은 ‘밑으로 기어라!’는 문구로 집약됩니다.

‘밑으로 기어라!’를 한자로 쓰면 ‘모실 시(侍)’이고 한글로 쓰면 ‘모시다’의 명사격 ‘모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밑으로 기며 납작 엎드려 온 몸으로 천지만물을 모시는 정신이 장일순 선생의 사상입니다. 서로를 모시는 게 혁명입니다. 대립과 갈등의 혁명이 아니라 보듬어 살려내는 혁명입니다. 쇠붙이를 맞대어 승리하는 혁명이 아니라 흙을 일구어 생명이 피어나는 혁명입니다. 비우고 흐르고 내리고 숙이는 혁명입니다.

장일순 선생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만물이 위대한 것입니다. 풀 한 포기에 대한 존경심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것으로는 곤란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또한 한 포기의 풀과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래 전부 위대한 것입니다."(<나락 한 알 속의 우주> 176쪽)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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