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종교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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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종교 바꿔요!
  • 유형선
  • 승인 2018.07.02 09: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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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제 작은 딸 수린이는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았고 ‘엘리사벳’이라는 영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여하면 본인만 성체를 받지 못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자신도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언니처럼 첫영성체 교리반을 다니면서 하얀 드레스 입고 사진도 찍을 것이고 결국 성체도 받게 될 것이라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드디어 올 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작은 딸은 지난 3월부터 첫영성체 교리반을 다녔습니다. 자녀를 첫영성체 교리반에 등록시킨 경험을 가진 부모라면 분명 공감하실 겁니다. 아이 한 명 첫영성체 준비하는 것은 온 가족의 지극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매주 토요일 첫영성체 교리반을 다녀야 하기에 모든 가족은 작은 딸 첫영성체 교리반을 중심으로 주말 일정을 수립합니다. 

저희 가족이 다니는 성당은 자동차 없이는 접근이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 중에 운전이 가능한 사람이 저 뿐입니다. 덕분에 저의 토요일 일정 역시 작은 딸 첫영성체 교리반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아빠와 엄마와 중학교 1학년 큰 딸까지 모두 토요일 오후 3시 어린이미사를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과제물도 온 가족이 함께 수행합니다. 성경 필사를 해야 하는데 작은 딸은 마르코 복음을, 아빠와 엄마는 마태오 복음을 필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문 외우기가 매주 숙제입니다. 4년 전에 첫영성체 교리를 받았던 큰 딸이 매주 동생에게 기도문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종종 도저히 외우지 못하겠다고 작은 딸이 선언을 하면 제가 구원투수로 나섰습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작은 딸을 책상에 앉혀 놓고는 화이트보드에 기도문을 적고 한 줄 한 줄 집어가며 의미를 알려주고 함께 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A4 용지에 기도문을 프린트해 주면 작은 딸은 외우기를 반복하면서 성당을 향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아이의 개종 요구

어찌어찌 두 달이 지나가던 5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아침, 작은 딸은 잠에서 깨자 마자 펑펑 울면서 엄마를 찾았습니다. 아내가 우는 아이를 한참을 달래며 안아 주었습니다. 물론 저도 아이 곁에서 아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울음이 겨우 잦아든 작은 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는 왜 저에게 첫영성체 교리를 받으라고 하셨나요?”
“수린이도 언니와 엄마와 아빠처럼 미사 중에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도록 하려고 그랬어.”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딸이 
“아빠! 우리 종교 바꿔요! 우리 불교나 이슬람교로 바꿔요.”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느닷없는 개종 이야기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울고 있는 아이에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더 묻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내를 통해 들었습니다. 작은 딸은 악몽을 꾸다 깼는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서는 자신의 겨드랑이를 매우 세게 찔렀답니다. 아이는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소리를 낼 수 없어서 매우 답답했습니다.. 예수님 꿈을 하나 더 꾸었습니다. 두 개의 텐트가 있고 자신과 여러 어린 아이들이 텐트 안에서 놀고 있었답니다. 우연히 작은 딸만 텐트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 텐트에 불을 지르고 다니더라는 겁니다. 작은 딸은 너무나 끔찍한 꿈에 충격을 받고는 깨어나서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악몽처럼, 하느님도 예수님도 신부님도 모두 싫어요

아내가 우는 아이를 한참을 달래 다시 재워 놓고는 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주전 교리반부터 첫영성체 교리반 강도가 갑자기 강화되었습니다. 약 2개월 동안 교리반을 운영하면서 기도문 외우기와 성경 필사 과제가 너무 어렵다는 부모들의 원성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던 신부님께서 단호히 결단을 내리십니다. 미사 후 교리시간에 성경필사와 기도문 외우기를 진행하고, 기도문을 정해진 기한까지 단 한개라도 외우지 못하면 첫영성체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세우시고 공표하십니다. 

문제는 분위기였습니다. 8월에 있을 첫영성체까지 모든 기도문을 반드시 암송해야 하며 성경 필사도 무조건 완료해야지만 첫영성체가 가능하다는 점과 여기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교리실에서 공표하는데, 그 분위기가 참으로 강경하고 냉엄한 기운으로 가득했다는 게 아내의 증언입니다. 

강경하고 냉엄한 기운을 가득 받은 작은 딸은 한 주 동안 기도문을 외우다가 눈물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토요일을 맞아 성당을 찾았다가 또 한번 강경하고 냉엄한 교리실 분위기를 접합니다. 작은 딸은 매주 성당을 찾을 때마다 강경하고 냉엄한 기운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성당도 미사도 하느님도 예수님도 신부님도 모두 싫어집니다. 이런 연유 때문에 예수님이 못된 악인으로 나오는 꿈도 꾼 것 같습니다. 

작은 딸이 악몽에 시달린 주말에는 토요일 어린이미사를 가지 않고 일요일 저녁미사에 온 가족 이 함께 갔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제가 신부님을 만나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단호하셨습니다. 기한까지 기도문을 빠짐없이 외워야 한다는 방침을 분명하게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준비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내년이나 다음에 첫영성체를 시키라는 겁니다. 저도 각오했던 일이었기에 다음 기회에 첫영성체 준비를 시키겠다고 신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태도'

아이들이 8살에 학교에 처음 가면 학교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학교에 대한 기대감과 꿈에 부풀었다가 막상 학교에 가서는 숙제와 규칙이 싫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그러나 교회에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 삼십 오년 전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첫영성체를 준비할 때에도 기도문 외우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하나하나 구술 시험을 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매 교리 때마다 과제로 내 주었던 기도문을 다 함께 큰 소리로 바치면서 그것으로 모두들 외웠다고 치고 다음 기도문으로 넘어 갔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성당을 다닌 저 역시도 ‘부활삼종기도’ 혹은 묵주기도 ‘빛의 신비’를 지금 외워보라고 하면 눈만 꿈뻑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제 기억 속 첫영성체 교리반은 무엇보다 신부님과 수녀님의 따뜻한 음성과 태도였습니다. 그당시 초등학교 첫영성체 교리반에서 보좌신부님은 칠성사를 설명하시면서 고해성사의 비밀은 신부의 목숨과 같고 고해성사의 비밀을 어긴 신부는 즉시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게 가톨릭의 가르침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비록 초등학생이었지만 교회라는 조직이 대단히 일관된 태도를 무척이나 오랫동안 유지하여 왔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더라도 신부님의 말씀과 태도에서 교회라는 조직이 믿을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떨 때는 수녀님이 강의를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다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던 수녀님은 강의 내내 사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랑 이야기만 하시다 사랑 이야기로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다지 재미있는 수업은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강의보다는 몸으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사 십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제 고향 성당 제일 뒤쪽 의자에서 눈을 감고 기도하시는 수녀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도하는 수녀님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순종과 헌신이 무엇인지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풍광입니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부드럽게 사랑하며

어쨌거나 올 해 작은 딸 첫영성체는 물 건너 갔습니다. 꿈에서까지 예수님이 악인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작은 딸이 예수님과 화해하는 게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작은 딸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관할 성당이 아닌 다른 성당으로 미사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다른 성당으로 미사를 나가자고 하면 잘 따라옵니다. 

본당 신부님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신부님으로 바뀔 겁니다. 좀더 유연하고도 부드럽게 아이들을 대할 신부님이 저희 관할 성당에 오시게 해주십사 기도하고 싶은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설령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이 좀더 유연하고도 부드러운 태도를 가지셨더라도 다시 첫영성체 교리반에 등록하자고 하면 작은 딸이 순순히 응할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글을 써보니 불안했던 제 마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제 딸들은 저희 부부의 품 속에서 자라날 겁니다. 제가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두 딸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될 겁니다. 결국 제가 할 일은 미카서 말씀처럼 정의롭게 행동하고 부드럽게 사랑하며 하느님과 함께 거니는 태도를 매 순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슴 벅차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 자는 아이 곁에서 조용히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이 아이의 꿈길을 평화롭게 하소서.”*

*<생활 속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 한상봉 지음, 바오로딸, 23쪽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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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철루카 2018-07-31 05:28:43
저는~모태신앙인도,아닙니다.
깜찍하고~귀여운,따님을두셨네효^^
첫~영성체(세례성사)
주님의~은총이,함께하시길
바랄께효^^
저는~통신교리를,받았네효^^
문답식으로~마지막에교리^^
공부와~신부님강론!!!^^
저는~아주쉽게,첫영성체를
하게~되었네효,신부님께서
예수님이~물위를걸어다니,신다는
말씀중에~어,이상하네^^
사람이~물위를,걸어다닌다!!!^^
저는~도저히,상상이안,되었네효
찰고,시험보고~신부님께서^^
고개를~갸우뚱하셨쵸???
예수님의~제자들은,오합지졸
예수님~께서는,기도문술술
입으로만~기도하는사람들^^
안~좋아하심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