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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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돈에 관하여
  • 한상봉
  • 승인 2018.04.17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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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혁명보다 더 뜨거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5

한 때 지칠 줄 모르는 도박꾼이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 안에서 무수히 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것도 결국 ‘돈’ 때문이었다. 그는 늘 돈에 시달렸기 때문에 ‘선금’을 당겨 받고 값싼 원고료에도 어쩔 수 없이 매달려 글을 써야 했다. 그에게 사실상 “돈은 자유”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가 감옥에 간 것도 3000루블 때문에 빚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으면, 돈 덕분에 확보되는 자유가 한쪽에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돈 때문에 생기는 예속의 굴레가 있다. 돈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지은 서사시의 형태로 삽입된 ‘대심문관’이다.

 

예수를 비난하는 대심문관. 러시아 현대화가의 그림

대심문관 이야기

인간은 한편으론 물질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 돈(맘몬)을 추구하고, 한편으론 자유(하느님)를 추구한다. 그러나 돈과 하느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선언하면서, 지상의 빵 때문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은 “무력하고 영원히 모순 속에서 허덕이는 영원히 비천한 존재”이므로, 그들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지상의 빵이다.

대심문관은 자유가 아닌 돈 있는 굴종이 인간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당장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는 빈곤한 사람들에게 자유 운운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리스도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빵이 없으면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렵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자유가 다라고 할 수도 없다.

대심문관이 그리스도를 비난하는 이유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무지몽매한 인간 군상’을 위해 돌을 빵으로 만드는 기적을 그리스도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돌을 빵으로 만든다는 것은 한 개인과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나아가 전 인류의 복지와 관련된다. 돌이 변해서 빵이 되기만 한다면 빈부의 차이도, 굶주림과 전쟁과 범죄도 없을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1티모 6,10)라고 말했지만, 버나드 쇼는 “돈의 부재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돈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모든 건강하고 성공적인 개인의, 그리고 국가의 도덕은 그 근본에 이 사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부정하고 억누르는 교사나 잔소리꾼은 인생의 적이다. 돈은 도덕을 컨트롤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인간은 늘 배고픈 짐승인가

그러나 돌을 빵으로 만들기만 하면 모든 인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대심문관의 입장은 일리가 있지만 진리는 아니다. 그는 인간을 ‘배고픈 짐승’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모든 인간을 초보적인 경제학 자루 속에 무참하게 구겨 넣었다. 대심문관의 생각은 인간을 간단히 모욕함으로써,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지만, 돈의 부재 역시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부자가 다 악당이 아니듯이 가난한 사람이 다 성인군자는 아니다. 또 부자는 다 현명하고 부지런하고 가난한 사람은 다 어리석고 게으르다고 말하지도 않는다.”(석영중,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336쪽)

러시아 속담에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돈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가 난다면 그것을 거머쥔 인간의 손에서 냄새가 날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연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조건 그들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자들을 사악하게도 그리고, 고매하게도 그린다. 그러나 명예도 양심도 모두 접고 부자가 되기 위해 질주하는 삶을 경멸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이다. 돈이 다인 사람에게는 돈이 전부이고, 돈이 다가 아닌 사람에게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에 대한 사람의 관계는 필요와 욕구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 돈을 원하는 사람, 이 두 가지가 꼭 같지는 않다. 누구나 돈을 필요로 하지만, 그 절실한 정도도 다르고, 돈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돈을 이해하는 정도도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잘 이해했고, 돈을 읽었고, 절실히 아주 절실히 돈을 필요로 했지만, 돈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로지 돈을 필요로 했지, 원하지도 사랑하지도 아끼지도 않았다. 그러니 돈이 그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석영중, 위의 책, 338쪽)

[참고]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석영중, 2008, 예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석영중, 2015, 예담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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