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하느님의 눈길을 감당할 수 없는 영원한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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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하느님의 눈길을 감당할 수 없는 영원한 노예
  • 한상봉
  • 승인 2018.01.17 0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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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분노의 대변자, 미켈란젤로 -1

종교개혁이 일어난 모든 곳에서 그림들이 폭동 가운데 파괴되었다. 사람들은 뜯어낼 수 없는 벽화에 석회를 발라버렸고, 조각품들은 산산조각을 냈다. 전염병처럼 번진 ‘성상 파괴’는 그동안 착취당했던 농민들이 압제자들에게 가한 복수였다. 교회에 조용히 걸려 있을 뿐이었던 성스러운 물건들이, 직전까지 이 성상들 앞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던 사람들에게 파괴됐다. 그 책임은 성직자들에게 있었다.

예술, 상징을 통해 하느님의 영으로 들어가는 문

중세 말 교회에서는 성상을 수단으로 미신 같은 행태가 자행되었고, 교회는 그리스도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도배되었다. 츠빙글리가 분노했듯이, 음탕한 화가들은 살빛이 곱고 매끄러운 여자들만 그렸다. 결국 성상 파괴는 교회의 타락에 대한 윤리적 · 종교적 분노였다. 이들은 성상을 거부함으로써 이 부패를 척결할 것을 다짐했다. 형상을 거부하는 구약성경과 초대 교부들의 생각을 근거로 마련된 개신교의 공간에는 어떤 장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난 첫 성상파괴에 정신적 주모자가 된 사람은 안드레아스 보덴슈타인 폰 칼슈타트였다. 그는 <형상의 제거에 대하여>라는 문서를 발표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어떤 형상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회에 형상을 거는 행위는 십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이란 사실상 ‘말씀이 형상을 이긴’ 사건이다. 이런 태도는 초기 그리스도교로 복귀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사실상 초기교회는 예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들은 형상의 사용을 몰랐고,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는 교부들도 대부분 형상을 거부하였다.

역대 교황들이 이야기한 대로 성상들이 문맹자인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효용성을 인정하더라도, 16세기의 교회에서 성상은 미신을 부추기는 우상에 다름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회에서 성상이 제거되자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규정하는 상징적 사고도 동시에 파괴되었다. 발터 니그는 <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분도출판사, 2012)에서 “인간은 종교적 그림을 감상하며 상징적으로 느끼는 법을 배운다”고 말하며, 성화가 백성들에게는 그림으로 된 성경이었다고 전한다. 그동안 신자들은 성화와 성상이라는 예술적 상징을 통해 영적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예술이 교회에서 박물관으로 쫓겨나면서 작품들은 세속화된 전시물로 변했다. 영원으로 향한 통로가 이렇게 차단되었다.

 

Jacopino del Conte, Ritratto di Michelangelo 1535

발터 니그는 “예술은 그 깊은 본질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종교화뿐 아니라 ‘모든 예술이 종교적’이라고 말했다. 영국 신비가 윌리엄 블레이크는 “예술은 구원으로 가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말했으며, 휠더린이 “시인은 거룩한 그릇”이라고 말한 것처럼 화가도 직관적 능력과 자신의 재능을 통해 신성에 형체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성상과 성화가 파괴되는 시대에 예언자처럼 나타난 피렌체의 예술가가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는 ‘종교적 본성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발터 니그는 말한다. “그에게는 어떤 교리보다 하느님을 애타게 찾는 영혼이 더 중요했다. 이 영혼의 배고픔은 하느님만이 달래주실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향해 일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가 한창 나이 때 율리우스 2세 교황이 성당 천장에 금칠을 더 많이 하라고 명령했다. 교황에게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교황 성하, 예전 사람들은 금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들이 그리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호사스러움을 업신여겼습니다.”

하느님의 눈길을 감당할 수 없는 영원한 노예

미켈란젤로, 라고 하면 흔히 우리는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 같은 프레스코화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미켈란젤로가 가장 사랑한 것은 ‘조각’이었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3대 화가로 떠올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가 곧 미켈란젤로였다.

그는 때로 돌처럼 거칠고 단단했으며, 대리석처럼 자신의 믿음에만 순응했다. 그는 대리석에 자기가 만들려고 하는 형상이 살아 있으며, 그가 자신을 깨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여겼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눈부신 대리석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무아경에 빠졌으며, 작품에 몰두하기 전에 아주 긴 시간을 카라라에 있는 채석장에서 직접 돌을 고르며 보냈다. 베드로 첫째 서간의 “살아있는 돌이 되라”는 권고가 그에겐 현실이었다.

그에게 대리석은 생명을 간직한 존재였고, 그의 임무는 죽은 돌에서 생명을 불러내는 일이라고 믿었다. 돌은 어두운 심연을 간직한 폐쇄된 실존이었으며, 그는 창작에 대한 열정적 욕망으로 자신의 어두운 심연을 극복하고 싶어 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고,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었고, ‘돌처럼’ 고독했다. 미켈란젤로는 괴테나 모차르트처럼 좋아서 일하지 않고 고통 때문에 일했다. 그의 작품들은 절망의 부르짖음이며, 하느님에 대한 호소였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작업에 몰두했다. 피곤이 몰려오면 옷이며 장화도 벗지 않고 잠이 들곤 했다.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한밤중에 일어나 작업하는 일이 잦아서 초를 매달 수 있는 모자를 고안하기도 했다. 타고난 약골이었지만 그의 작업은 격렬했다.

 

미켈란제로의 <노예>

미켈란젤로는 로댕처럼 돌의 무거움을 거두어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래쪽을 향하려는 돌의 본성과 그가 쪼아내려고 했던 형상의 갈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은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결코 온전히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참하고 추악한 현실을 직면하려는 미켈란젤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인간의 힘으로 하늘을 날려고 하지 않았으며, 라파엘로처럼 이상적인 ‘가벼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여러 점의 <묶여있는 노예>에 새긴 것은 자신의 운명이었다. <묶여있는 노예>에서 노예의 형상은 분명하게 돌출되어 있지 않아서 미완성인 것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가 노예의 윤곽만 드러내고 그만둔 바람에 노예가 돌이라는 재료에 완전히 갇혔다는 인상을 준다. 미켈란젤로는 이 노예보다 강한 ‘중력의 영’이 그를 완강하게 움켜잡고 있다고 느꼈다.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전력으로 싸우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이런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통해 저는 당신에게 끌렸습니다. 하지만 곧 저 자신의 무게로 인해 당신으로부터 다시 떨어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숨지으며 감각세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시몬 베유

시몬 베유는 <신을 기다리며>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노예들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바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인 ‘야훼’가 히브리 노예들의 하느님이었음을 기억하게 해 준다. 시몬 베유의 표현대로 한다면, 노예들은 ‘기성질서가 강요하는’ 중력의 법칙에 짓눌린 사람들이다. 베유는 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곧 ‘은총’이며, 그것은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다.

실제로 시몬 베유는 천성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베유는 ‘그 당시의 노예’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들과 농부들처럼 거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정말 그들처럼 되기를 갈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체포되어 심문을 당했을 때, 심문관이 “이러다가는 창녀들과 함께 옥살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을 때, 베유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그 바닥을 알고 싶었어요. 그 세계에 들어가려면 옥살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몰랐네요.”

자청해서 불행한 자들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시몬 베유 같은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의 자비는 위로할 수조차 없는 비통함 속에서 빛나는 것”이라고 믿었던 시몬 베유는 불행을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베유는 “불행은 잠시나마 신의 부재를 낳는다.”라고 했는데, 하느님이 없는 것처럼 공포가 영혼을 뒤덮었을 때, 사랑할만한 것이 전혀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 영혼이 사랑하기를 그치면 하느님은 영영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몬 베유는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텅 빈 가운데서도 계속 사랑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영혼의 미세한 일부라도 여전히 사랑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면 욥에게 그러했듯이, 언젠가 하느님이 그 영혼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영혼이 사랑하기를 그치면 그때부터 그 영혼에게 이승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참고]
<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 발터 니그, 분도출판사, 201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2> 조반니 파피니, 글항아리, 2008
<미켈란젤로의 생애>, 로맹 롤랑, 범우사, 2007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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