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올바름보다 먼저 친절함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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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 “올바름보다 먼저 친절함을 택하라.”
  • 진수미
  • 승인 2018.01.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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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2017, 스티븐 크보스키)

[진수미의 문화칼럼] 

‘헬조선’이라는 말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오늘날 삶의 어려움을 고발하는 표현으로 대중적 공감을 얻었다. ‘헬조선’이란 자본주의 체제 하의, 소위 ‘루저’에게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계급적 위계와 현실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위너’에게는 무한경쟁의 루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라는 탄식과 동의어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루저’와 ‘위너’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 승패가 어디 있겠는가.

또 ‘헬조선’은 여성에게는 저임금, 유리천장, 독박육아, 대리효도처럼 구시대적 의무와 차별이 존속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남성에게는 자신의 파이 조각을 여성과도 나눠야 하는 변화된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 땅에서 누구도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헬조선’은 그러한 비명과 자조가 뒤섞인 표현이다.

이러한 현실을 견디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원더>(2017, 스티븐 크보스키)가 이야기해 주는 것에서 나는 작은 해답을 얻었다. 함께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상상력, 유머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영화 <원더>에서,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 분)는 유전적 문제로 안면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탄생의 순간, 행복해야 할 분만실은 장르를 변경, 돌연 공포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어기는 여러 차례 외과 수술을 받았지만 어린아이가 그를 보면,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낯선 얼굴을 지녔다.

영화는 어기가 열 살이 된 데서 시작한다. 이때는 또래가 중학교 신입생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시기. 홈스쿨링만 받아왔던 어기는 학교생활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그에게, 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결심 뒤에는 주변의 희생과 지지와 있었음은 물론이다.

엄마 이자벨(줄리아 로버츠 분)은 어기가 주변적 존재로 고통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왜 희생이 항상 어머니의 몫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직접 홈스쿨링을 담당했고, 어기에게 도피하고 싶은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상상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어기는 현실을 대체하기 위한 상상 공간을 창조해냈는데, 그것은 헬멧 착용이 일상인 우주공간이다. 이자벨은 헬멧 쓴 아이가 주인공인 SF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서 그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빠 네이트(오웬 윌슨 분)는 유머와 솔직함을 가르친다. 덕분에 어기의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분), 그리고 반려견 데이지를 포함한 다섯 가족의 식탁은 웃음으로 가득 찬다. 네이트는 아내가 보여주는 이상적 사고방식에 짓궂은 현실감각을 보탠다. 이자벨이 유치하게 놀리는 아이들에게 어른스럽게 대하라고 가르치면, “그런 애들한테는 한 방 날려!”라고 속삭이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또 그는 어기가 학교생활이 고통스러워서 “(이런 상황이) 바뀔까요?”라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이러한 성격은 어기에게서도 나타난다. 어기는 사랑스러운 유머감각의 소유자이다. 예고편에도 나온 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기와 친구가 된 잭(노아 주프 분)은 어기에게 성형수술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다. 어기는 천연덕스럽게 없다고 말하고, 이어서 말한다. “이미 여러 번 했지. 이렇게 잘생겨지려면 한 번 갖고는 안 돼.” 그리고 그는 상대에게 실망하면 그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기. 이 또한 어기의 커다란 장점이다.

우정이 발휘하는 힘

어기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이란 대체로 남과 다르다는 것을 죄악시한다. 남다름에 대한 인정은 차이를 존중할 줄 아는 성숙함과 더불어 생겨난다. 따라서 아이들과 어울리려면 평범함을 가장해야 한다. 어기는 아이들이 표정을 감추지 못하므로 어른보다 상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때 나는 바닥을 본다. 신발은 그들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어기의 통찰력은 놀라운 데가 있다.

어기는 크리스마스보다 할로윈을 좋아한다. 자신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날 학교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가면무도회와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어기는 이 순간을 만끽하지만 잭이 그가 곁에 있는지 모르고 내뱉은 말로 크게 상처를 입는다. 이때 도움의 손을 내민 것이 썸머(밀리 데이비스 분)이다.

썸머는 교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흑인 여자 아이로, 적대적이고 편견어린 시선에 저항하는 용기를 지녔다. 나는 썸머의 정체성과 정의로움, 친절함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인종적 편견이 뿌리 깊은 미국 사회에서 그녀는 흑인이자 여성으로 차이의 이중고가 내면화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원래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 유사한 처지의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법이다.

썸머가 어기를 돕는 장면은 마치 장애학이 여성주의에서 이론적 모델을 빌려오는 상황의 알레고리처럼 여겨졌다. 이들 학문은 모두 소수자 정체성을 근간으로 하므로, 실제로 장애학은 여성주의에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이러한 소수자 학문 간 연대와 우정이 <원더>에서 재현되었다고나 할까.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원더>는 안면 장애인 어기를 중심에 놓되, 그를 둘러싼 성장기 캐릭터의 시선을 섞어 넣음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에게 소수자 재현의 올바른 방향을 물어보면, 그들을 중심에 놓는 재현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재현은 매우 드물다.

최근 한국 영화의 장애인 재현을 살펴보자. 일명 ‘도가니법’까지 만들게 했던, 그래서 높이 평가받았던 <도가니>(2011, 황동혁)는 장애 아동보다 그들을 구조하는 비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원작에는 없었던, 장애인의 무능을 강조하는 장례식 신을 삽입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안면 장애 아동이 나오는 <두근두근 내 인생>(2014, 이재용)도 비장애인 부모의 희생과 변화가 중심에 놓인다는 점에서 재현의 전형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원더>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영화이다. 동시에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으로 오래 기억될 영화, 소품이지만 우리의 현실보다 위대한 영화이다. 또한 비장애인이 현실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우수한 계몽영화이다. 영화가 알려주는 원칙은 이러하다. “올바름과 친절함이 충돌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친절함을 택하라.”

마지막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이들의 정의로움과 친절함이 우리 현실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어기는 그러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표적 인물이 터쉬만 교장(맨디 파틴킨 분)이다. 그는 어기를 괴롭히는 학생과 그의 부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기의 얼굴은 바뀔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 합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인종이 다른 이들 모두가 이번 생에서 바뀌기 어려운 현실을 살고 있다. 이들은 보통의 일반 존재보다 ‘헬조선’의 상황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바뀌지 않는 현실로 고통 받는 이를 만날 때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서나 친절의 미덕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곳이 ‘헬조선’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임을 나는 <원더>에서 배웠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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