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신과 함께’ 영화에 진기한 변호사가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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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신과 함께’ 영화에 진기한 변호사가 없다고요?”
  • 유형선
  • 승인 2018.01.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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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선 칼럼]

최근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영화 <신과 함께>를 저희 가족도 보았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제 두 딸들은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원작만화를 몇 번씩 통독할 만큼 열혈 독자였기에, 원작의 중요 캐릭터인 진기한 변호사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는 뉴스를 보고 아쉬움이 컸습니다. 물론 온 가족 함께 영화를 보았습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신과 함께> 원작만화를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구경만 하다가 작심하고 세트로 구입한 건 2016년 가을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 일주일 동안 다녔던 국내 여행이 발단이었습니다. 포항부터 시작해 진도까지 동해와 남해 일대를 자동차로 돌면서 지역에 깃든 한국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려는 일종의 학습여행 이었습니다. 포항에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흔적을 찾으려 했습니다. 남해안 구석구석에서 만났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기념물과 기록에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무엇보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진도 팽목항을 들러 세월호 분향소를 찾아 참배했습니다.

처용암이 있었던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답답한 마음이 이어졌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분노도 컸습니다만, 고대의 신화와 설화 같은 우리만의 이야기들이 제대로 기념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울산에서 만난 처용암은 석유화학공장 굴뚝숲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처용암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덩그러니 세워져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이 다 시큰거렸습니다. 아마도 어린 딸들은 처용암을 보고 왔다는 사실을 기억도 못할 것 같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두 딸들에게 우리의 신화를 몸으로 체험 시켜 주는데 현실의 여건상 한계가 많다면, 반드시 좋은 책을 찾아 딸들에게 선물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어린 딸들에게 언제까지 그리스로〮마 신화만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 애니메이션도 훌륭한 신화 이야기가 맞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초등학생 두 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이 서정오 선생님의 민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좀 더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화를 찾고 싶었습니다. 인터넷과 서점을 뒤졌습니다. 먼저 삼국유사 속 신화를 소재 삼아 제작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있을 것도 같았지만, 양과 질적으로 숙성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을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짬짬이 보았던 웹툰 ‘신과 함께’가 참으로 엄청난 내공을 간직한 작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2016년 여름부터 시작했던 고민의 결론은 그 해 가을 총 8권의 ‘신과 함께’ 박스 세트를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놀랍게도 큰 딸은 아빠가 <신과 함께> 만화책 세트를 집에 가져온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테이블에 만화책을 쌓아 놓고 동생과 함께 읽던 행복한 추억이라고 말입니다.

김자홍의 국선변호사는?

영화에서는 49일간의 험난한 저승재판을 저승차사들이 변호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원작만화에서 저승차사들은 망자의 영혼을 저승 입구까지만 안내하고, 영혼마다 49일간의 저승 재판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한 명씩 선임됩니다. 생전에 남을 위해 쓴 돈에 따라 저승에서 선임하는 변호사가 달라집니다. 생전에 남에게 많이 베푼 사람은 유능한 변호사가 기다립니다. 반면 한 푼도 안 쓴 사람은 변호사가 기다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아예 돈을 안 낸 건 아니지만 미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이런 영혼들에게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해주는 국선변호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김자홍 씨에게 배정된 국선변호사가 바로 ‘진기한 변호사’입니다. 원작만화와 달리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저희 딸들을 크게 낙담시켰던 바로 그 문제의 주인공입니다. 49일동안 만나는 재판에서 진기한 변호사는 놀라운 변론과 임기응변으로 소시민 김자홍을 변호합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주 멋진 이야기이니 반드시 원작만화에서 감상하시기를 권합니다.

 

지장보살과 염라대왕

사후 재판 신화 이야기는 오랜 예부터 전해지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기록에서도 찾아진다고 합니다. 열 번의 사후 재판 이야기는 무속신앙은 물론이고 불교 사찰에서도 건물로 지어져 모셔지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의 불교사찰을 방문했을 때에 열 개의 지옥도 또는 열 명의 심판관 모습을 표현한 시왕상(十王像)을 보셨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시왕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심판관은 역시 염라대왕입니다. 다섯 번째 재판을 관장하는 심판관이며 업경이라는 거울로 생전에 지은 죄를 모두 살핀다고 합니다.

불교 사찰에서 시왕을 모시는 건물은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열 명의 재판관인 시왕을 모신다고 시왕전(十王殿), 또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冥府)라고 하여서 명부전(冥府殿)으로도 불립니다. 세번째 이름이 지장전(地藏殿)입니다. 미륵불이 오시기 전까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맡으신 지장보살(地藏菩薩)과 함께 모셔 지기 때문입니다. 지장보살은 대개 한 손에 지팡이를 집고 머리에 두건을 쓰거나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신과 함께>를 그린 주호민 만화가는 지장보살을 모티브 삼아 진기한 변호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작만화에서 지장보살은 혼자 힘으로 모든 영혼을 구제하는 것이 역부족이라고 판단하시고 저승 근대화 시점에서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는 지장 법률 학원, 즉 저승 최초의 변호사 양성기관을 설립합니다. 바로 우리의 주인공 진기한 변호가를 배출한 학교입니다.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만 진기한 변호사가 보고 싶어서 저희 가족은 ‘신과 함께’ 만화를 다시 펼쳤습니다. 조만간 봄이 오면 두 딸들을 데리고 등산을 하기로 했습니다. 등산 중에 만난 절에도 들어갈 겁니다. 특히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지장전을 보면 아주 반가울 것 같습니다. 소시민 김자홍을 위해 트랙터를 용접하던 염라대왕이 기억날 것 같습니다. 지장보살님 얼굴에서 이 영혼 저 영혼 가리지 않고 모두 구하려고 뛰어드는 우리의 진기한 변호사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잘 모르기에 지나치던 바로 그 공간이 친근하게 다가 올 것 같습니다.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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