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사목, 성령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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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사목, 성령 안에서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10.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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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루살렘-1

신약성서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모습으로 끝맺는다. 이 묵시적 언어는 비록 아름다운 시(詩)같지만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성서가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좀 더 피부로 잘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내가 살았던 뉴 예루살렘 공동체를 자세히 설명하고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졌는지 설명함으로써 성서의 이러한 교훈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서품을 받기 직전, 사목 생활에서 무엇을 하기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프란시스코회의 전통에 따라 피정 같은 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성인(成人)들에게 설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이 안된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성서신학을 강의하거나 뉴멕시코에서 인디안 원주민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내가 분명하게 원치 않았던 것은 10대 청소년과 같이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내가 소속한 수도회는 신시내티에 있는 로저 베이컨 고등학교에 교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나는 일년 동안만 가르친다는 조건으로 그곳에 가기로 했다. 그때가 1971년 1월이었고, 나는 여전히 내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6월에 내가 자라는 동안 다녔던 본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기 위해 캔사스주의 토페카에 있는 집으로 갔다. 몇 년 동안의 공부와 훈련을 받은 뒤 드디어 위대한 날이 왔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기대한 것처럼 그렇게 흥분되지 않았다. 주교님이 서품을 주기 위해서 나에게 손을 올려놓았을 때조차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사실 거의 무감각이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그러나 서품식이 끝나자 나는 친척들과 친지들이 다 모인 교회의 응접실로 돌아갔던 것을 기억한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들이 나를 축하하러 왔고 주교님과 기쁨에 넘친 부모님이 나의 양쪽에 서 계셨다.

그때, 모르는 여성 한 사람이 걸어와서, “신부님,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맙소사, 벌써 상담을 해야하나!” 라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은 지금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다음에 다시 오시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보다는 좀더 정중하게 뭔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우겨서, 나는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그녀와 함께갔다. 그녀는 나를 보고 말했다. “성령께서 당신을 쓰실 것입니다.” 나는 이미 사제가 되었으므로 그런 소리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했다.

“신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 신부님은 1900년에 성령 운동이 시작됐었다는 바로 그 곳에 서 계십니다. 1월1일, 종종 ‘스톤가의 어리석음’이라고 불리었던, 조그만 건물에서 몇몇 사람들이 성령의 은총을 구하기 위해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일년 동안 계속 만나서 기도 드렸습니다. 그런 후 새해 전날 저녁에 성령께서는 아주 강한 방법으로 그들을 어루만지셨습니다. 그들은 성 바오로가 말했으나 수세기 동안 들어 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과 치유를 경험했으며, 여러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보 같고 미쳤다고들 했지만 그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신약성서에서 읽었던 똑같은 은총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 십년 후에, 그들이 처음 만났던 건물은 부서졌습니다. 17번가와 스톤가가 만나는 모퉁이, 바로 그 자리 위에 가톨릭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곳에서 서품을 받는 첫 번째 사제입니다. 내가 당신의 미사에 참례를 하는 동안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서 신부님을 특별한 방법으로 쓰시겠다고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으나 그녀가 말하는 것을 진정으로 다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녀를 믿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후에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때의 만남을 모두 잊어버렸다. 그러나 내가 신시내티에 돌아가 로저 베이컨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할 때 나에게 그녀와 그녀의 예언을 생각케 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교실에서, 또 학교 미사에서 한 말들을 통해 아이들이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성령의 손길을 느꼈다. 2학년 남학생들까지도 그것을 느꼈는데, 그들은 가장 다루기 힘든 청중이다. 그들 중의 한 학생이 내게, “분명히 그것은 로어 신부님 당신 덕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내 콧대를 꺾어 놓았으나 나는 그 학생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고등학생들조차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더 진지한 방법으로 그 분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몇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기 시작했고 주말에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은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을 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께, 또 서로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등학생들을 위한 피정

나는 학기 중간에 신시내티 대교구의 젊은이 피정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그때 주님께서 청년 사목을 위해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 6개월 전만해도 내가 10대들과 같이 일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으나 지금 나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피정 지도를 자청하고 있었다.

나는 남학생들을 위한 첫 피정 중간에 가톨릭 가족운동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 시의 다른 쪽으로 가야 했다. 나는 그 모임에서 예정했던 것보다 더 오래 이야기하게 되어서, 매우 늦게 목이 쉬어서 피정 장소로 돌아왔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들이 내가 없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그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한 것을 들어 본적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나 피정 참가자들은 공동체라는 개념조차 없는 것이 분명했다. 학생들은 제각기 자기의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중 몇 명은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피정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어떤 효과를 내려면 예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져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로저 베이컨 고등학교에서 함께 온 세 명의 젊은이들에게 이 사태를 위해서 같이 기도하자고 했다. 나는 이 세 젊은이가 주님을 알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네 명은 다른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곳 옆에 있는 조그만 방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한 젊은이가 내게 말했다. “신부님, 신부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신부님께 주님을 믿으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신부님이 나가셔서 강의를 하시는 동안 저희는 여기서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주님께서 듣기 원하시는 것을 들을 것이라고 주님을 믿습니다.” 다른 젊은이는, 주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신다(고린토 후서 12,9-10)고, 바오로가 말한 성서 구절이 있는 곳을 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위한 말씀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강의하러 다른 방으로 갔고, 그동안 그들은 거기 남아서 기도했다.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강의가 끝난 뒤에, 나는 고백성사를 원하는 사람은 다 내 방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학생들이 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넘쳤다. 조금 전에 그들은 전형적인 고등학교 상급반 학생들이었으나 무언가 새로운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다. 무엇인가가 그들을 감동시켰고, 무엇인가가 그들을 변화 시켰는데 그것은 분명 내가 아니었다.

이 일이 있은 지 2시간 후에 나는 그들이 경험한 것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었고, 마지막 학생이 내방에서 나갔다. 나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보통,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있곤 했는데,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때쯤이면 간식이 마련되어 있던 강당으로 가보았으나 그곳은 불이 꺼져있었고 조용했다.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당 안까지 들여다보았다.

나는 문을 열었다. 거기에 그들이 모두 제단 주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떤 학생은 성서를 읽고 있었다. 한 학생은 조용히 기타를 치고 있었다. 서로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이 주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 몇 주일 동안, 나는 만일 내 장상들이 내가 처음에 원했던 요청을 재빨리 들어주어 나를 뉴멕시코로 보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피정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오해가 많이 있었다. 남학생들은 번개같이 자기들 학교로 돌아갔다. 그들이 경험한 것을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몇몇 선생님들은 피정 지도자가 아이들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려고 어떤 심리적인 수단을 쓰지 않았는가 하는 두려움을 가졌다.

그러나 나를 다시 만나러 온 남학생들은 그날 밤에 그들이 경험한 것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생생한 것이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잃을까봐 걱정했고,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누가 그들에게 주었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주님이시라고 확실히 말했다. “좋아”, 내가 말했다, “만일 이것이 단지 인간의 행보(行步)라면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말한대로 그것이 정말 하느님의 행보(行步)라면,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그것이 여기에서 어디로 가는지 보아야 할것이다.”

노래가 너무 커서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들은 금요일에 내가 살고 있는 수도원으로 모두 오기로 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와서 현관 앞 거실이 가득찼다. 우리는 꼬박 3시간 동안 기도하고 노래했다. 우리는 다 함께 기쁨에 넘쳐서 성찬례를 거행했다. 그들이 노래를 너무 크게 불러 천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음날 나는 수도원의 몇몇 사람들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기분 나빠 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다시한번 내가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지혜로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모든 것을 돌보고 계셨다. 비록 그 자체로는 크게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무엇인가가 그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혹시 내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리면서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정말 이런 것 모두를 내가 조작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아마도 내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것을 인정할 정도로 충분히 정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몇몇 사람들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십대, 청소년 본당을 만들려고 하는 청소년 사제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설교하는 것을 조사하고 그 설교의 의미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가 임명되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짐을 덜어주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환영했다. 나는 교회의 판사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기꺼이 제출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렇듯이 모든 일이 잘 되었다. 조사 위원회는 내가 강론하는 것들이 다 성서에 근거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들은 몇 개의 유보조항을 만들었으나 내가 청소년 피정 프로그램을 계속하도록 허락했다.

동시에 금요일 저녁에 오는 아이들의 숫자는 계속 늘었다.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이 잘못된 이유로 거기에 왔으나, 얼마 후에 그들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남은 아이들이 있었고 이들이 더 큰 모임의 핵심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서로를 위해서 자기 삶을 내어놓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주님에 대해서 배웠다.

지금에 와서 그 당시 초기 몇 달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그 때를 우리의 “원기 왕성의 시대”라고 부른다. 우리는 늘 놀라운 일을 보았다. 매 기도모임에서 새로운 회개가 일어났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보기 위해서 다음 금요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마약을 끊고, 치유가 일어나고, 화해를 가져오는 등, 우리는 정말 많은 기적과, 정말 많은 변화된 삶을 목격하였다. 그런 일들은 하느님께서 초기에 신앙을 강화하여 더 깊은 믿음으로 여러분을 부르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다.

오래지 않아서 우리들은 수도원의 방에 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을의 어떤 이가 그녀의 집을 사용하라고 했는데 이 집은 좀 커서 방이 더 있었다. 그러나 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의 수가 늘어났고 노래를 할 때 사람들 무게 때문에 마루가 흔들리고는 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주교님을 만날 때가 왔구나”.


[원출처]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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