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유대인 중 9%가 '예수'란 이름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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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유대인 중 9%가 '예수'란 이름 가져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09.14 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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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고고학 – 15
사진출처= pixabay.com

사실 야고보, 요셉, 예수 라는 이 세 이름은 당시에 매우 흔히 사용되는 사람의 이름들이었다. 르메르에 따르면, 기원후 1세기 예루살렘의 인구가 약 80,000명이고, 이것을 두 세대로 계산하면 160,000명이다. 그 중 남자는 80,000명이다.

1세기 유대인들 이름에 대한 연구는 인구의 2%가 야고보, 14%가 요셉, 9%가 예수로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한 세대에서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요셉의 아들인 동시에 예수의 형제일 가능성은 0.025%인 것이다. 즉 기원후 30년에서 70년 사이에 예루살렘 인구 80,000명 중 1/4,000(= 0.025%)은 20명 정도이다.

그런데, 유골함에 죽은 사람의 이름과 함께 그 아버지와 형제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유골함 위에 형제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은 그가 유골함의 비용을 지불했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든지 매우 유명한 사람일 경우이다. 르메르에 따르면, 야고보의 유골함에 새겨진 예수는 성전 파괴 이전 예루살렘에서 유명했던 나자렛 예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야고보는 매우 개연적으로 신약성경과 요세푸스에서 “예수의 형제” 혹은 “주님의 형제”라 불리는 그 야고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르메르는 이 유골함을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금석학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야고보가 기원후 62년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야고보의 유골함은 기원후 63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르메르의 발표 이후, 야고보의 유골함은 고고학적, 필체학적, 언어학적, 성명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이 유골함과 명각에 대한 진위 논란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3년에 이스라엘 유물 관리국(IAA=Israel Antiquities Authority)은 지질학자 유발 고렌(Yuval Goren)의 연구에 기초하여, 유골함과 명각이 위조임을 기자 회견을 통하여 발표하였다. 이 유골함의 전형적 서체 부분과 흘림체 부분의 명각은 서로 다른 끌을 사용하여 두 단계에 거쳐 새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학문적으로 정리된 공식 문헌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단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을 뿐이다.

만일 이 유골함과 명각이 진품이고, 나자렛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첫째, 이 유골함은 예수와 야고보 그리고 그 가족들이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둘째, 신약성경의 사도행전과 갈라티아서에서처럼, 갈릴래아 출신인 야고보가 예루살렘 혹은 그 근처에서 살았다는 것이 입증된다. 만약 그의 가족이 여전히 갈릴래아에 살고 있었다면, 그의 유골함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의외일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의 가족은 예루살렘에서 살았을 것이고, 그래서 야고보의 가족묘가 예루살렘에 있었을 것이다. 셋째, 초대 교회 전승이 전하는 바와 같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혹은 그 인근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야고보의 유골함이 성전 산 근처 키드론 골짜기에서 발견되었다면, 이 추정을 가능케 한다. 넷째, 야고보가 유대인들의 유골함 장례 풍습을 따랐다는 것은 야고보의 공동체가 유다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

유골함에 새겨진 명각에 대한 고문서학적, 언어학적, 역사적 연구에 앞서, 유골함과 그 위에 새겨진 명각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이 분석은 유골함과 명각의 진위 뿐 아니라 연대 추정을 위해 중요하다.

야고보의 유골함과 그 명각에 대한 위조 논란시비에 대한 과학적인 판단을 위하여 2002년 9월 17일자로 발표된 이스라엘 지질 측량국(Geological Survey of Israel) 실험실의 문건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실험실은 야고보 유골함의 녹(patina)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즉 유골함의 녹은 안료 등의 그 어떤 현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현대적 도구를 사용했다는 표시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물함의 녹과 명각의 진정성을 약화시킬 그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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