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이 혁명가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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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이 혁명가란 있을 수 없다
  • 한상봉
  • 승인 2017.09.1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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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모든 삶은 장엄하다]-19

그게 언제였던가? 하늘이 차가울 만큼 맑았던 1987년 한겨울이었다. 인천 제물포역 지하 상가를 막 벗어나려는데, 낯익은 얼굴과 맞닥뜨렸다. 김윤경. 대학 같은 과 동기이면서 <청지>(淸芝)라는 교내 잡지를 발간하는 서클에서 활동했던 친구였다. 내가 군대를 가기 전에, 약 2년여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녀는 다소곳이 말없는 학생이었으며, 남의 눈에 두드러진 구석이라곤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 지금은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내 친구가 한동안 그녀를 좋아해서 쫓아다니며 고민을 토로했던 바로 그 당사자이기도 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저 그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이 친구를 4∼5년이 훨씬 지난 뒤에 우연히, 서울도 아닌 인천에서 마주친 것이다.

헤어진 지 꼭 일 주일 뒤에

내 상상에 따른다면, 내 친구처럼 역사 교사가 되어 있어야 했지만, 당시에 정작 그녀는 주안공단에 ‘위장’ 취업한 활동가로 나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얼굴이 잊혀져도 인상이 남아서 서로가 내버려 두었던 시간의 공백을 채워 준다. 그녀는 나를 곧 알아보았고, 다방에 가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나는 줄곧 당장에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 내느라고 애를 먹었다. 한 번쯤 그녀의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필이면 이름도 베아트리체였던 그 다방에 앉자마자, 그녀는 대학 졸업 후의 내 진로를 물어 왔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갈까 고민중이라는 답변에 대뜸 “종교는 관념”이라는 화두부터 들이대며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학생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나는 신앙 때문에 선배와 동료들로부터 관념론자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네들이 종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단순하게 종교가 신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기초한다는 철학적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만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제도 교회가 기득권층과 지배 권력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혜택을 누려 왔다는 혐의에서 면제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제도 교회의 몰염치한 부도덕성을 무조건 변호할 처지가 되지 못하였으며, 단지 해방 신학을 바탕으로 민중 해방 운동에 동참했던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례를 들어가며 해방의 도구이기도 한 복음에 관해서, 실천적인 신앙 운동에 관해서 말하는 것으로 그나마 면피(免避)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 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가 예전에 알던 연약한 여성이 아님을 알았다. 삶이 그녀를 단련시켰고, 이른바 1980년대가 낳은 혁명 의지가 그녀를 성장시킨 것 같았다.

내 연락처를 알려 주고 헤어진 뒤, 꼭 일 주일 뒤에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탄 가스 중독이라는 것이다. 나와 헤어진 뒤 그녀는 곧 월세방을 옮겼고, 이사한 날 밤에 연탄불을 지피고 잠들어서 영영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민중 운동 활동가이기 전에, 이십대 여성으로서 꽃다운 사랑을 누구와도 미처 만개해 보지 못한 채, 그렇게 그녀는 이승을 하직했다. 비정한 우주, 그리고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사라진 세상에서 이젠 제대로 말로 답변할 수 없으니, 두고두고 신앙이 관념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저승에서라도 그녀에게 떳떳한 말 한 마디 건네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힘이 사랑인가?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 해방 전사들 속에서 신앙이 혁명적일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무신론자로서 민중에게 기쁜 소식이 되려고 온 생애를 불사르며 살다 죽은 게바라에게 하느님은 민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가 즐겨 애송했다는 레온 펠리프의 시 한 편이 그의 비망록에 베껴져 있었다.

그리스도,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연고는
당신이 별나라에서 내려오셨기 때문이 아니외다.
당신이 내게 가르치기를
인간은
 

피와
눈물과
불안과 광명을 막고 닫혀진 문들을 여는
열쇠와
연장을 가졌노라고 하셨기 때문이외다.
그러하외다. 당신은 인간이 하느님이라고……
당신처럼 십자가에 달린 가련한 하느님이라고,
골고타에서 당신 왼편에 섰던 못된 도적도
역시 하느님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까닭이외다.

체 게바라에게는,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이 부질없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를 움직이는 힘이 사랑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다. 「쿠바에서의 인간과 사회주의」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좀 우습게 들릴지 모르나, 무릇 혁명가란 강력한 사랑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사랑이 없인 혁명가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조건과 더불어 혁명 지도자들은 크나큰 인간미를 간직하고 또 정의와 진실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만 극단적 교조주의에 떨어지지 않고, 냉혹한 이론에 치우쳐 민중과 동떨어지는 일이 없다. 혁명가들은 자기네 사랑이 하나의 귀감이요 원동력이 되도록 매일같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를 두고 해방 전사였던 네스토 파즈는 더욱 적절하게 말한다. “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 구세사의 예언자적 노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믿는다.…… 정의의 채찍이 착취자들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이다. 자기가 품은 사랑의 힘이 자기를 충동하여 이웃을 죄악에서 해방시켜야 함을 망각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채찍이 떨어질 것이다. 사랑이 결핍된 곳에 채찍이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피와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을 믿는다. 우리는 사랑을 기본법으로 하는 ‘새로운 땅’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신인간’과 ‘신천지’는 오로지 이기주의에 뿌리 박은 낡은 체제를 부수어뜨림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들은 모두 민중 해방의 대의에 헌신하다가 죽음으로써 선의의 사람들에게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연민>, 삼인, 2000. 이 글은 제가 삽십대 중반 <공동선> 편집장 시절에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되었군요. 세월이 흘러도 마음과 생각의 갈피는 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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